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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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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포메인 쌀국수 베트남 포메인 쌀국수 오랜만에 이웃 딸 내 집에 우리 내외가 들렀다. 이것저것 점심 준비한다기에 내가 극구 말렸다. "평소에 꼭 먹고 음식이 있다. 베트남 포메인 쌀국수다. 배달해 먹자" 내 고집에 딸내미가 손들었다. 일산의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에서 사위 녀석이 달려가 사 왔다. 역시 내 입맛에 딱이다. 아내, 딸, 사위 모두 다 맛있단다. 그럼 됐지! 뭐 ㅋㅋㅋ
새싹 혹여 저 어린 새싹을 무심코 밟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조마조마.
청바지 하나 사주세요 오늘도 변함이 없다. 이른 아침 산책길을 부지런히 걷는 늙은이. 이미 얼굴엔 땀방울로 줄줄 흘러내린다. 아~! 이게 웬일인가? 청바지가 구멍 투성이네. "여보게! 바지 하나 살 돈도 없나? 인생 헛살았네 쯧쯧" "그러게요. 잘못 살았습니다. 흑흑흑!"
강냉이 얼마 전 강원도 인제(김윤제님)에서 보내온 옥수수를 낱알로 일일이 까서 꼭 일주일을 바싹 말렸다. 그런 후에 그 낱알을 모아 5일 장날에 나가 뻥튀기 기계로 틔겼다. 뻥이요!!! 뻥튀기 강냉이는 아내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다. 중국에서 들여온 강냉이가 아니고 진짜배기 국산 강냉이를 먹는다고 킥킥거리며 좋아한다. 나는 치아가 좋지않아 먹질 못한다. 그래도 좋다. 아내가 좋아하니 에이구 ~ 쯧쯧쯧!
블로그 이웃들 매해 요맘때쯤 해서는 싸가지 없이 은근히 기다려지는 농산물이 있다. 태안에서 오는 감자. 강원도 인제에서 오는 옥수수. 시래기. 매해 꼬박꼬박 받아먹으니 나의 '염치'가 축구공만큼 부풀어 올랐나 보다. 모두 다 정많은 이웃 블로그지기들이 만들어 놓은 거다. "살아있는 동안 계속 보내주세요. 세월, 얼마 남지 않았어요." ㅋㅋㅋ
태극기 유감 내 나이 여섯 살. 해방 다음 해 6월 어느 날. 칠흑 같은 밤을 헤치고 나는 안내자의 지게 위에 걸터앉아 비 억수로 퍼붓는 한탄강 물살을 소리 죽여 헤쳐가면서 부모님과 함께 자유 대한민국에 건너왔다. 아직도 이 기억만은 생생하다. 행운아 나. 여든한 살 늙은 나는 오늘 아침에도 아침 운동길에 아파트 건물에 걸린 엄청 큰 태극기를 뿌듯한 마음으로 쳐다본다. 국민학교 3학년 어린 시절 6.25 북괴군의 남침으로 내가 살던 인천에서 부산으로 피난생활을 떠났다. 부산 남부민동 '서울 피난 용강 국민학교'에 다녔던 나는 어느 날 파도가 넘실대는 방파제위의 천막교실 칠판 위에 태극기를 내 손으로 그려 달았다. 오늘, 아파트에 걸린 태극기를 보면서 문득 까마득한 옛날 생각이 났다.
화이자 백신 2차 접종 후기 화이자 백신 2차 접종 후기 5월 24일 화이자 백신 1차 접종 왼쪽 어깨에 접종을 했다. 언제 주삿바늘이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쉽게 맞았다. 사전 공포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별것도 아닌데 떨고 있었잖아" 2차 접종일까지 후유증은 없었다. (3주 후) 6월 14일 화이자 백신 2차 접종. 역시 왼쪽 어깨에 접종을 했다. 주사 바늘이 들어가자마자 따끔했다. "1차 때는 따끔하지 않았었는데..." 접종 후 15분 대기했다가 유유히 걸어 나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타이레놀' 한 알을 먹었다. 문제는 그날 밤이었다. 한밤중에 눈을 떳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근육통이 쏟아졌다. "이상하잖아, 1차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6월 15일 (2일차) 이른 새벽에 땀투성이 얼굴로 중환자 몸짓으로 침..
이제 '코로나19'에서 벗어난 걸까? 화이자백신 1 ,2차 접종 끝나다. 이제 '코로나19'에서 해방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