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날 아침이다.
친손자 '준영'이 녀석이 지 애비 에미랑 곧 도착한다는 전화가 왔다.
좀이 쑤셔 집안에 있지 못하고 아파트 앞 마당까지 마중을 나왔다.
화끈거리는 집안 공기를 피한다는 이유로 아내 몰래 슬그머니 나왔다.
괜히 극성부린다는 아내의 핀찬을 들을까봐서다. ㅋㅋㅋ
좀 있더니 까만 '투싼'승용차가 마당에 들어선다.
"할아버지 안녕하셨어요?"
주차도 하기전에 내 앞에 멈춰선 차 안에서
손자놈이 내려진 유리창 너머로 소리를 친다.
그렇게 자주는 보지 못하지만 녀석은 볼 때마다
무럭무럭 자라는 것 같았다.
나를 쏙 빼 닮은 녀석.
저 놈이 내 친손자란 말이지...
괜히 뿌듯한 마음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적인 할애빈 모양이다.
며느리랑, 아들 그리고 손자녀석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녀석은 11층 보턴을 눌렀다.
나는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점점 널 닮아가는구나"
"그래요? 아버지를 더 닮은 것 같은데요"
아들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손자녀석이 냉큼 한마디 한다.
"부자유친!"
"준영아! 뭐라고?"
"부자유친이요"
"아니 네가 그런 말을..."
녀석은 한술 더 뜬다.
"아비 부(父), 아들자(子), 있을 유(有), 친할 친(親).
아들과 아버지는 친하다는 말이예요.
그러니까 닮았다는 이야기예요 "
"우와~! 어디서 배웠어?"
"유치원에서 배운 '사자성어'예요. 또 있어요.
금시초문. 이제 금, 때 시, 처음 초, 들을 문.
처음 듣는 다는 뜻이예요. 풍전등화. 바람 풍, 앞 전, 등잔 등, 불 화..."
손자녀석은 신이 나듯 끝이 없다.
나는 깜짝 놀랐다.
요즘 유치원에서는 한글 떼는 것은 기본이고
한문자까지 배운다는 소리다.
그럼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도대체 뭘 배운다는 소린가?
우리 때만해도 국민학교 3학년이 되어도 한글을 떼지 못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했었는데...
하긴 나 역시도 국민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한글을 뗀것 같았는데.
세월이 무섭게 변해간다.
오후에 외손녀까지 들이 닥쳤다.
조용했던 집안이 난리법썩이다.
손자, 외손녀 둘은 종이에다 뭔가를 적고 있었다.
고모가 용돈을 외상으로 하자니까 빈틈없는 손자놈이
고모에게 물어 집주소를 적어 택배로 보내란다.
그러면서 적어준 쪽지편지다.
어른 글씨체인데다 받침 부호까지 정확하다.
이 할애빈 그 나이에 글자를 쓸 엄두도 못했는데...
어찌 볼거나... 이 상황을.
히히히...
이 쪽지편지는 우리 집 삭탁 유리밑에 영원히 끼워 둘 작정이다.
아내와 나는 밥 먹을 때마다 한번씩 내려다 보고 서로 눈짓으로 말을 한다.
그리고는 웃는다.
<200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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