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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다시 보는 딸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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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딸을 좋아했다.

그래서 두번째 아이 출산하는 예정일.
아내를 병원 진통실에 데려다 놓고 위로는 못할 망정
"이번엔 딸을 꼭 낳아야 해!"
진통하는 아내에겐 모진 소리지만
천연덕 스럽게 웃음을 지으며 농담조로 한마디 했다.

장모님이 옆에서 염려 말고 출근하라고 내 등을 떠 밀었다.
그 옛날에는 남편이 진통하는 아내 옆에 붙어 있으면
사람들은 '바보 칠삭동이'로 여겼다.
지금 세상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어쨋든 아내는
내 명령(?)대로 예쁜 딸을 출산했다.
- 아! 나도 딸을 낳을 수 있구나! -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참 신기했다.
- 아들 낳고, 딸 낳고...-

나는 아들만 많은 집안에서 장남으로 자라난 몸이라
딸 형제를 보면 늘 부러웠다.
그래서 내 대에는 딸 아이가 있었으면 했다.
그러나 큰아이는 역시 아들이었다.
아들 많은 집안엔 아들만 낳는다고 하더니...

두 번째 출산때였다.
장모가 회사에 있는 나에게 전화를 했다.
"강서방, 또 아들이야!"
"녜? 아들이요?"
순간 기쁨이 넘쳤다.
아들? 정작 딸을 바랐는데 아들이라는 전화를 받고보니 더 반가웠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
- 나도 역시 별수없구나, 한국 남자 그대로야! -

"하하하..강서방! 딸이야, 딸!"
"녜? 딸이라구요~!"
전화통이 깨질 듯 소리를 질렀다.
주위의 동료들이 깜짝 놀랬다.

- 그렇게 바라던 딸인데, 왜 서운하니? -
순간적으로나마 아들이라 좋아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 딸이 결혼을해서 자기를 쏙 빼닮은 딸을 낳았다.
ㅋㅋㅋ


딸은 자라면서 사내아이들과는 다르게
역시 기집애들 하는 짓 그대로 따라했다.
엄마에게도 딸은 친구라고 했지만
아빠에게도 딸은 늘 귀엽고 예쁘고,
그리고 한편 안쓰럽기만 한 존재이기도 했다.
딸은 그랬다.


어느 새 딸은 훌쩍 자라 결혼을 해서
예쁜 자기모습을 쏙 빼닮은 딸을 낳았다.
그리고 하루도 걸르지 않고 친정에다 전화를 해댄다.
"엄마, 오늘은 두분이서 뭐했어? 아빠는?"
*

위의 일러스트레이션은
내 딸아이 첫돌이 되기전에 연필로 세밀히 스케치를 한 것이다.
벌써 35년의 세월때문에 종이가 누렇게 빛이 바랬다.
그래도 들여다 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나도 이렇게 세밀화를 그렸을 때가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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