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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선덕여왕, 이렇게 찍었다. 김세홍 촬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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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실이의 세밀한 표정 잡는데 애 먹었지요" 

 

 

저녁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쯤 해서 누가 현관의 초인종을 누른다.
누굴까?
인터폰으로 본 화면엔 막내처남 얼굴이 확대되어 왔다.
이내 현관문을 열어주면서 웬일이냐고 반겼다.
나보다는 동거 견 ‘새비’란 녀석이 알아보고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안아달란다.
처남은 녀석을 안고 소파로 가서 일단 입을 맞추고 내려놓는다.
그 녀석 어렸을 때 우리 집에 데리고 온 주인이 바로 처남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저 난리를 피우는 것이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정작 촬영감독인 자신은 어색한 웃음을 그린다.



“지나던 길에 저녁 좀 얻어먹으려고요”
우리 내외가 결혼했을 당시만 해도 처남은 9남매 중에서 막내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철부지였었다.
이제는 당당한 MBC의 드라마 촬영감독이 되어 제법 폼(?)을 잡고 있으니 세월이 정말 빠르긴 하다.

 
“김차장님, 아니 김감독님 MBC에 입사한지가 몇 년이나 되었지요?”
“히히히... 매부, 평소대로 하세요. 나도 벌써 18년이나 되었다구요”

 
그렇다. 내 세월만 생각하고 남의 세월 가는 것은 모르고 있었으니...
내일 모래면 50이 되는 처남인데 내 눈에는 아직도 어린 막내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 큰일이다.




 
지난번에는 ‘햐얀거탑’ 드라마 촬영으로 한창 바쁘더니
이번엔 ‘선덕여왕’ 로케이션으로 중국, 내지는 지방출장으로 통 얼굴 볼 시간이 없었다.
오늘, 누나네 집으로 시간을 내어 놀러온 것을 보면 요즘은 좀 한가한 모양이다.
잘 됐다 싶었다. 그러지 않아도 선덕여왕이 하도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촬영의 뒷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았으면 했었는데 기회가 온 것 같다.


“김세홍, 잘됐다. 내 블로그에도 등장시켜줄게. MBC에선 유명한 촬영감독이지만
내 블로그에 등장한다는 것도 더 없는 영광으로 생각해야 해”

처남은 누나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으면서 안주를 겻들여 소주를 마셨다.
그러면서 빙그레 미소를 답한다.

 
그리고 보니 공식적인 인터뷰가 아니라 사석인 식탁 인터뷰가 된 셈이다.
편안하고, 부담이 없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정담이 되었다.




'하얀거탑'의 촬영당시의 김감독



‘선덕여왕’은 2009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여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왔었던
MBC창사 48주년 특별기획 드라마다.
장장 11개월에 걸쳐 스팩타클한 영상으로 시청자들에겐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런 영상을 만들기 위해선 캐스트들과 스탭들의 숱한 고생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사극은 처음인 것 같은데?
“박홍균 PD와 촬영을 맡은 저, 그리고 후배 채창수 촬영감독, 모두 사극은 처음이었어요.
처음인 사람들 끼리 만나 드라마를 만드니 어쩌면 기존 사극의 고정 틀을 벗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겠다하는 서로간의 기대가 컸었지요.
제가 촬영 메인인 A팀을 맡았고 채감독이 B팀을 맡았어요.
A팀은 미실과 덕만이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덕만과 비담과의 애틋한 연모 등의
미세한 감정씬을 주로 찍었어요.“

 
-기존의 드라마와는 좀 다르게 촬영했다고 하던데?
“그것은 처음부터 기획한 것이었어요. 미실이를 비롯해 등장인물들을 다양한 숏으로 찍었지요.
예를 들어 투숏, 클로즈업, 바스트숏으로요.
그렇게 찍어진 영상은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훨씬 긴박하고 흥미가 느껴지거든요.
사실은 이번 선덕여왕에선 배우들의 세밀한 감정과 기분, 내지는 느낌을 담느라 힘들었어요.

그런 씬을 뽑기 위해선 연기자와의 호흡은 물론 타이밍 맞추는 게 제일 어렵지요.
그래서 늘 대사를 하는 인물 앞에 상대인물을 오버로 걸어야
거리감이나 감정이 잘 나오거든요. 일종의 저만의 노하우이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미실이의 표정을 잡는 게 상당히 중요 했을 텐데...
“맞아요. 미실이의 감정을 놓치지 않기 위해 리허설 할 때 어느 쪽에서 어느 각도로
찍어야 할지 미리 파악해야지요. 일예로 멀리서부터 줌인해서 찍어야할지,
얼굴 앞에 카메라를 놓고 찍어야할지를 고민 했고 또 표정의 세밀한 변화를 확실히 잡으려면
덕만을 사이드 오버를 걸어 포커싱을 이동 시키면서 찍어야했어요.
그 때 미실이의 표정과 눈썹 움직이는 타이밍이 잘 맞춰지면 PD와 제가 O.K를 했지요“

 
- 카메라 외에 다른 보조기계도 쓰진 않았나?
“어떻게 잘도 아시네요?”
 
- 아하, 내가 이래도 남산 KBS출신 아니야? 그 때 미슬 분야를 담당해서 카메라 워킹은 좀 알고 있지.
  한 회 20분 드라마 같으면 몇 백 컷의 씬으로 나눠지는데 최고의 연출자는

  그 컷을 아주 스므스하게 연결하는 거지.
  말하자면 시청자들이 컷 넘기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게 말이야. 내 말이 맞잖아? ㅎㅎㅎ...

“맞지요. 상당하세요. 그 정도까지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저희가 애를 먹는 거죠.
어설픈 카메라 앵글은 금방 나타나거든요. 그래서 이번 선덕여왕에서는
블랙프라미스라는 포브필터를 이용해 인물의 윤곽을 분광시키는 효과를 시도해 보았어요.
대게는 역광이 세게 들어 올 때는 사람의 실루엣이 약간 떠 보이는데 이 필터를 사용하면

인물과 벽사이의 거리감도 생기고 또 신비스러운 분위기도 얻을 수 있지요.
지난 번 ‘하얀거탑’때에도 한번 사용해 본거였어요.
이 분광효과는 일반적으로 방송촬영에는 콘트라스트가 강해 잘 쓰지 않지만
제가 고집을 부린 것이죠“




'선덕여왕'으로 <2009 그리메상>을 받은 김감독


-앞으론 어떤 작품을...
“사극은 사양하고 싶어요. 너무 힘들어서...
이번 중국 사막에서의 로케이션은 세찬 모래바람으로 죽는 줄 알았어요.
얼굴을 수건으로 칭칭 감아도 어떻게 모래가 뚫고 들어오는지...
뭐, 그래도 또 사극을 맡긴다면 그 때는 사극만의 소도구를 잘 활용해
예쁘고 화려한 씬을 찍을 생각이에요.“

 
- 참! 선덕여왕 때문에 상도 받았다는데...
“예, 받았지요.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가 주최하는 ‘2009 그리메상’이에요.
 생각해 보면 작년은 저에겐 행운의 해였든 것 같아요.
  MBC 사상 최고의 시청율을 기록한 드라마에 일조를 했었으니까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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