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인 내가 앞치마를 두른 속깊은 뜻은?
아내생각
어머머! 세상없어도 자긴 아침밥 꼭꼭 먹고 출근한다는 거 잘 아는 내가 또 실수를 했네.
그래 아침밥은 먹었어? 반찬은? 국은?
또 계란 프라이 두 개로 적당히 때웠구나?
나를 좀 깨우지 그랬어? 내가 괜히 미안해지잖아?
시어머니가가 아셨으면 금쪽같은 아들 굶긴다고 야단 난리 블루스를 치셨을 텐데... ㅋㅋㅋ...
아~! 정말 나는 못 말리는 여잔가 봐.
야근 때문에 늦게 잠을 잤다고 해도 일찍 일어나야했는데 매일 이 모양이니 속상해 죽겠어.
어쩌지 자기야? 나 아직 화장도 끝내지 못했거든. 옷도 챙기지 못했어.
오늘도 또 지각인가 봐.
여보야! 지금 자기가 설거지 하려고 앞치마 입은 거 맞지?
그냥 놔두라니까. 이따가 퇴근하고 들어와서 내가 치우면 되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번 자기가 하는 거 싫어. 나도 양심이 있는 여자잖아.
왜 나는 매일 이런 모습을 자기에게 보일까?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마누라가 게으르고 덜렁대니까 속상하지?
그래서 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화딱지 꾹 참고 이렇게 앞치마 두르고 주방에 나선거지?
자기 얼굴엔 그렇게 쓰여 있지 않지만 자기 가슴 속에선 꼭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거든,
미안해 자기야. 정말 내일 아침부턴 늦잠 자지 않을게. 후후후...
그러나 저러나 자기는 참 멋있는 남자면서 남편이야.
여자를 사랑할 줄 아는 남자. 그리고 시대를 앞질러가는 마인드.
이런 남자들 요즘 별로 없다고 하더라. 말로만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나불대면서 실제 행동은 정 반대래.
내 옆자리 정은이도 알고 보니 속아서 결혼했다고 혼잣말로 만날 징징 대더라고...
그렇지만 자기야! 우리 동창 애들은 좀 별난가봐.
자기 남편들은 모두 다 집에서 세탁기 돌리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집안 청소하는 거 기본이래.
심지어는 냄새나는 음식쓰레기, 분리수거는 여자들에게 손도 못 만지게 한다나?
더더구나 우리같이 맞벌이하는 부부는 남자가 가사 일 돕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하나같이 쫑알대더라고...
어느 쪽 말이 맞는 건지 좀 헷갈리지만 자기야!
시대가 자연적으로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니까 너무 억울해 하지 마. 알았지?
남편생각
그래 당신 생각 맞아. 여자만 죽어라 가사일 한다는 거 요즘 세상에 별로 없는 것 같아.
나도 가사일 분담하는 거 좋아.
하지만 당신! 착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지금 내가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거 솔직히 좋아서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 당신도 알지?
나는 이럴 때마다 가슴 속엔 만감이 교차하고 있어.
과연 나는 왜 매일과 같이 솔선해서 아침, 저녁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것일까?
내가 진실로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늦잠자고 일어나서 허둥대는 아내가 안타까워서인가?
그것도 아니면 흔들리는 우리 가정을 똑 바로 진정시키기위해서 인가?
순간적으로 사랑과 미움의 번민이 시시각각 교차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그런 내 자신에 몹시 당황하고 있거든.
어쩌면 이것은 나 자신도 모르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닐까?
여보. 부탁해.
제발 나를 당신 마음대로 생각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어.
혹시라도 남편이 설거지를 한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혹시라도 남편이 쓰레기를 버린다는 것은 나를 아끼기 때문이야.
혹시라도 남편이 내말에 절대적으로 순종한다는 것은 나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야.
정말 당신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여자는 가끔 자기도취에 빠져있다고들 하는데 그것은 참 어리석은 생각이야.
여자 스스로 세상에서 제일 영리한 척 하지만 그것은 잘못 생각한 거라고. 결코 아니야.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 당신도 자기도취의 착각에서 깨어났으면 좋겠어.
내가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생각하는 것, 이 모두가 오로지 가정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나 스스로 당신의 머슴이 되는 것뿐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말이야.
모르긴 해도 당신은 또 내일 아침 침대에서 늦게 일어 날거야.
틀림없이...
<현대건설신문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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