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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2

50대 백수, 외출한 아내를 기다리며 하는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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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에 사는 딸네 집으로 가서 얼갈이김치를 담가준다고

아내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옷을 챙겨 입는다.

“같이 갈래요?”

“으응~! 싫어. 구성없이 애비가 뭐한다고 따라나서. 난 집에 있을 래”

“그래요, 그럼. 나, 늦을지도 몰라요. 점심은 알아서 챙겨들어요”

그렇게 그냥 무덤덤하게 아내는 현관문을 열고 휑하니 나갔다

 

사실 백수신세에 벌건 대낮에 사내놈이 마누라 뒤꽁무니 졸졸 쫒아 다니며

딸네 집이나 놀러 간다는 게 어쩐지 좀 머쓱하다.

차라리 마누라 없는 집에서 나 혼자 이리저리 뒹구는 게 훨씬 속 편하다.

허구한 날 두 내외가 좁은 집에서 매일 얼굴 마주하며 숨 쉰다는 게 지겹기도 한데

이런 기회에 떨어져 있는 것도 정신건강상 상쾌(?)하다.

 

나는 거실소파에 읽다 만 책 한권을 들고 펄쩍 뛰어 몸을 날린다.

너무 편안한 행복감이 순간적으로 온몸을 휘감는다.

한참이 지났다.

오늘따라 이상스레 책속의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뜬금없는 생각들만 자꾸 머리를 헤치고 나온다.

 

 

 

그래, 점심 때 라면을 끓이자.

콩나물 넣고 파 송송 썰어 계란까지 넣자.

그리고 젓가락으로 쉬지않고 면 가락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끓이는 거야.

그래야 라면 발이 탱탱해지는 것이거든.

기왕이면 치즈도 한 장 덮으면 더 좋고...

참, 햄도 썰어 집어넣으면 금상첨화겠지?

그리고 라면 한 젓가락에 소주 한잔씩.

그래서 알딸딸하게 취하는 거야.

ㅋㅋㅋ

 

리모컨으로 벽 TV를 켰다.

이 방송 저 방송 모두 시사프로에 올인하고 있다.

때가 때인 만큼 시청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박근혜, 어쩌고저쩌고… 손학규 어쩌고저쩌고…”

그래! 모두 수고들 한다,

대통령 공짜로 하는 사람 있냐?

아~! 있었다. 누구누구는 대통령 공짜로 했었지. ㅋㅋㅋ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 어느새 다저녁때가 되었다.

왜 하루해가 이렇게 짧지?

백수들은 하루가 거북이 발걸음처럼 느려빠졌다고 했는데.

그러나 저러나 이 여자는 뭐하느라 아직도 나타나질 않는 거야?

사내가 좀스럽게 언제 오냐고 채근 전화하기는 좀 그렇다.

조금 있으면 오겠지 뭐.

아까 낮에 먹은 알딸딸한 술기운도 다 깼다.

끼니때가 되니까 뱃속에서 또 기별을 하나보다.

 

 

      

 

보온밥통을 열어보았다.

색깔이 시커먼 현미밥이 있었다.

아내는 건강에 좋다고 주구장창 현미밥을 짓지만

솔직히 하얀 백미보다는 먹음직스럽지 않다.

그래도 군말 없이 먹고 있지만 사실 맛은 그저 그렇다.

그만 밥통뚜껑을 닫아버리고 냉장고문을 열었다.

새롭게 들어앉은 신선해보이는 찬 통은 없다.

다시 냉장고 문을 팍 소리 나게 닫았다.

배는 고픈 것 같은데 별로 입맛이 땡기지 않는다.

백수주제에 염치가 있지,

삼식이도 때로는 건너 뛸 줄을 알아야하는데 눈치가 영 아니다.

 

어느새 밤 10시다.

정말 이놈의 여편네가 왜 안 나타나는 거야?

웬만하면 딸년한테도 전화가 왔을 텐데

오늘은 두 여자가 모두 입들을 다물기로 약속을 했나?

'아내'라는 호칭이 '여편네'란 말로 둔갑해 내 입에서 거칠게 튀어나온다.

 

그런데 내 꼴이 이게 뭐야?

밤 거실 유리창에 비춰진 내 모습이 참 유치찬란하다.

목이 늘어진 런닝셔츠, 후줄근한 반바지에 까칠한 턱수염 몇개까지

누가 50대에 잘 나가던 대기업에서 밀려난 기죽은 백수아니랄까봐 꼭 태를 낸다.

그 찌질이 모습의 창문을 획 소리나게 열어 제치고 베란다로 나간다.

그리고 아래 주차장 쪽에 시선을 쏟는다.

빌어먹을 웬 날씨도 이렇게 후덥지근해!

                                         <자칭 '찌질이 백수'라는 M님이 보내 주신 사연을 추렸습니다>

 

추천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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