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바람소리

동유럽의 작은 파리 부다페스트의 스케치 추억

728x90

 

동유럽의 작은파리 부다페스트의 스케치 추억

<추억1>

 

 

 

 

서울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는 비행기로 26시간이나 걸렸다.
그것은 마치 정처 없이 떠내려가는 바다 위의 빈 술통 안에서
눈을 꼭 감은 채 가느다란 숨을 쉬며 언제까지고 출렁이고 있어야만 하는
그런 암울한 기분의 연속이었다.
새로운 도시에의 들뜬 환상으로 비행기에 오른 기분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중간에 캐나다의 앵커리지, 그리고 스위스의 취리히에 잠깐 내려
잠시 막혔던 숨을 토해 낼 수 있었지만
머나먼 헝가리까지는 또 다시 좁은 좌석에서 몇 시간을 인내와 싸워야 했다.


몇 시간마다 기내식(食)이 수시로 나왔지만 도대체
아침, 점심, 저녁을 구별할 수가 없으니 그냥 답답할 뿐이었다.
잠을 자야 하는 것인지 깨어 있어야만 하는지,
창밖은 계속 눈부신 태양이 작열한다.
창밑을 보면 시퍼렇기만 했던 바닷물이 어느 새 얼음바다로 변했는가 하면
갑자기 시야에는 온통 눈 덮인 산맥들이 들어온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이 지구덩어리가 연출하는 갖가지 모습들을 볼 수 있다니...
앵커리지를 거쳐 가는 유럽여행은 지루함과 흥미(?)의 연속이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어쨌든 스위스에서 우리가 탄 헝가리 MA520 일류신 기는
부다페스트의 말레브(Maleev)공항에 미끄러지듯 살며시 내려
지쳐버린 승객들을 토해내기 시작 했다.

 

 

                                             부다페스트의 야경. 다뉴브강의 다리 모습이 환상적이다.

 

공항은 의외로 그 모습이 작고 초라했다.
서비스 시설이 낙후된 공산주의 체제라 이해가 갔지만
그래도 일개 국가의 수도 공항이 이런 정도라니...
마치 우리나라의 지방 도시 같다고 표현해도 충분 할 것 같다.
마중 나온 사람들이 지루해 할까봐 우리는 부랴부랴 짐을 찾아 포터에 실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포터 손잡이에 'SAMSUNG'이란 '로고'가 버젓하게 붙어 있는 게 아닌가.
흔히들 일본이 약삭빠르다고 들었는데
그 보다 더 빠른 나라가 이젠 코리아란 말인가?
우리나라는 1989년부터 공산권국가로는 처음으로 헝가리와 정식 수교를 맺었었다.
새삼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괜히 어깨에 뿌듯이 힘이 들어가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포터를 밀며 출입구 쪽으로 나왔다.


아뿔사! 나와 놓고 보니 세관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큰 실수를 한 것 같아 뒤를 돌아보며 두리번거렸지만
도대체 내 시야에는 세관 검사대가 들어오질 않는다.

세관검사대가 아예 없었다.
어찌된 일일까?

이것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다.
까다롭게 굴 것이라 생각하여 내심 걱정했었는데 의외로 싱겁게 되고 말았다.

 

 

일러스트/강춘

 

1989년 1월 이후 헝가리는 개방정책의 피켓을 들었다.
한번 터진 개방의 물결은 거세게 소용돌이쳐 넘쳤다.
빠르다고 자부했던 우리네보다도 한 발자국 더 앞선 것이다.
나는 강력한 자본주의를 표방한 우리네 자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본다.
그리고 세계에서 까다롭기가 몇 번째 안에 든다는
서울의 인천공항의 세관도  곰곰이(?) 생각해 본다.

헝가리는 소련의 지배하에 있었던 공산주의 국가였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날 일시에 그 엄청난 폐쇄의 벽돌을 와르르 허물어버리고
새 모습을 보이는 과단성을 보였다.

 

 

 

일러스트/강춘

 

 

택시를 타건 길거리를 거닐던 간에 낯선 외국인들만 보면
그들은 어김없이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심지어 호텔 로비에 까지 암달러상들은 용하게도 스며들었다.
"달러 바꾸세요!"
"........?"
"1백 달러에 7천 포린트(Porint) 드립니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해 점퍼 차림의 키가 큰 청년을 로비 한쪽 구석으로 유인(?)했다.
"8천 포린트 어때요?"
"7천 5백 드리겠습니다"

은행이나 호텔에선 1백 달러에 5천 2백 포린트를 환전해주니까
무려 2천 3백을 더 주겠다는 것이다.
상당한 금액차이라 입맛이 안 당길 수가 없다.
"도대체 달러를 바꾸어서 어디에 쓰려고 합니까?"
궁금했다.
"오스트리아에 나가 전자제품을 사려고 해요.
그 곳엔 질 좋은 서구 상품들이 많이 있거든요"

 

 

 

                            일러스트/강춘


헝가리는 89년 1월부터 여행 자유화를 시행했지만 자국인이

외국에 나가 쓸 수 있는 돈은 1인당 불과 3, 4백 달러로 제한했다.
그것으론 국민들에겐 양에 차질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외국인들만 보면 달러를 바꾸기에 바쁘다.
작년 한 해만 해도 오스트리아 국경을 통과한 헝가리 사람들은 4백 만 명.
하루에 1만 3천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들이 뿌린 돈은 무려 2억 달러.
주로 라디오, TV, 비디오 제품들이 구매 대상이다.<계속>

 

          <덧>

          꽤나 오래 전에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여행하면서 잡지에 기고했던 글이다.
          나의 ‘다음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고자 다시 손질해서 올린다.

          3회에 걸쳐 포스팅 할 예정이다.

 

 

추천합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