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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친구야, 살아있니? 2기 ‘키보이스’ 리더 조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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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살아있니? 2기 ‘키보이스’ 리더 조영조!

1970년 1월 어느 날, 남산의 KBS-TV 스튜디오에선

가운데 나를 둘러싸고 '키보이스'멤버들이 폼을 잡았다.
왼쪽이 리드 기타 친구 조영조다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가요(해변으로 가요)
젊음이 넘치는 해변으로가요(해변으로 가요)
달콤한 사랑을 속삭여줘요
연인들에(연인들에) 해변으로가요(해변으로 가요)
사랑한다는(사랑한다는) 말은 않해도(말은 않해도)
나는 나는 행복에 묻힐거예요"
...........................

 

너무나도 유명한 ‘키보이스’의 노래, 모두들 기억하시죠?

그들 맴버중에 리드 기타를 치던 조영조는 나의 절친이었습니다.

그와 헤어진지 40여년이 지났지만 생사를 모릅니다.

"기준(본명)아! 죽었니? 살았니?"

 

1970년 1월. 남산의 KBS-TV의 A스튜디오.

나는 ‘쇼’ 셋트 작업을 정리하던 중 우연히 보컬팀 ‘키보이스’와 조우를 했습니다.
아니 그들 보다는 그들 중에서 리더였었고
친한 친구였던 조영조(본명.조기준)를 우연히 만났던 것입니다.

“야! 조기준. 나야”
“앗! 강춘!”

우리는 멋진 포옹을 했습니다.
조영조는 나와 고교 동기동창이었습니다.
고교를 졸업하고 실로 12년만의 만남이었습니다.

 

왼쪽이 조영조

 

 

그와 나는 어느 친구보담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도 나와 같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펜화솜씨는 당시의 코주부 김용환 씨 못지않을정도의 실력이었습니다.

나는 늘 그의 가늘고 긴 손가락에서
쓱쓱 그려져 나오는 환상적인 펜화에 항상 기죽어 있었습니다.
그것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기타를 들고 다녔고 주로 재즈풍의 곡을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폴앵카 ‘크레이즈 러브’ 기타 연주는 나를 무아지경에 빠뜨리곤 했습니다. 

코드를 잡은 왼쪽 손보다 줄을 탱기는 오른 손의 빠른 동작은 신기에 가까웠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고교시절을 그림과 기타연주로 정을 듬뿍 쌓아나갔습니다.

 

대학을 들어가면서 그는 ‘서라벌’예대, 나는 홍익미대로 갈라선후

12년만에 방송국 스튜디오에서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한쪽은 그림쟁이로 한쪽은 당대의 인기가수로...


 

 

 

 

 

 

그 날 이후로 거의 40여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을을 치솟는 인기스타를 만난다는 것은 아무리 절친이라고 힘들었습니다.

바람결에 가끔씩 날라 오는 소식도 이젠 없습니다.
여름철 마다 빠지지 않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보컬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 노래는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세월은 쏜살같이 흐릅니다.
나이들면 어렸을 적 친구들이 생각난다고 합니다.

 

"친구야! 어디에 있니? 죽진 않았겠지? 얌마! 살아있으면 한 번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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