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노래를 잘했다.
성량 좋고, 감정 좋고, 박자도 잘 맞추었다.
적어도 남편인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이따금 마다 나를 살살 유혹한다.
“저녁밥 먹고 노래방 가면 참 좋겠다”
참 재미라곤 털끝만치도 없는 남편인 나.
아내의 이 말만은 눈치 빠르게 슬쩍 대화를 돌려버린다.
나는 남편감으론 빵점이다.
한발자국 더 나아가서 말한다면 ‘나쁜 남편’ 1호이다.
결혼하고 나서 수십 년이 지났지만 노래방 가본지가
다섯 손가락 안으로 셀 수 있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가정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더더구나 아들 딸 모두 출가시켜놓고의 지금.
단출하게 둘만이 사는 가정의 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거창한 질문인 것 같지만 대답은 너무나 뻔하다.
시쳇말로 아내와 죽이 짝짝 맞는 행동거지.
그 자체가 바로 행복일 것이다.
그중에 중요한 한 가지가 ‘남편과 함께 노래방가기’의 아내 소원도 들어있다.
그런데 나는 이 조항에선 항상 제동이 걸리고 만다.
아내는 그런 요지부동의 남편이라는 것도 잘 알지만
그래도 그 시퍼런 자존심 다 버리고 가끔 나에게 매달린다.
“오늘 같은 날엔 노래방 가서 후련하게 녹 슬은 목소리나 틔어주었으면...”
저녁을 먹고 어둠이 깔리자 나는 아내와 함께 아파트 단지를 나섰다.
나는 타고 난 음치다.
대한민국에 왜 음치상은 없는지 모르겠다.
나라는 사람 그 음치대회에 나가면 단연 1등은 나한테 돌아올 텐데...
목소리의 톤과 감정은 주위의 사람들이 탄성을 지를 정도로 뛰어나지만
박자에 들어가선 제멋대로다.
평생을 노력해보지만 안 되는 것은 결국 안 된다.
그래서 노래방 가기가 죽기보다 싫다는 것이다.
이유는 또 있다.
왜 그 컴컴한 곳에 가서 한껏 폼 잡고 자기만족을 느끼는 군상들이 싫어서다.
이 대목에선 내 자신만의 편견일수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내가 노래방 가기 싫어하는 체질이라는 게
바로 문제라는 걸 잘 안다.
아파트단지 앞에는 바로 네온이 휘황찬란한 유흥거리가 있다.
그런 내가 오늘은 아내의 말대로 순순히 노래방엘 따라나섰다.
딱 2년만인 것 같다.
컴컴한 실내는 그대로다.
아내가 열곡을 부르면 나는 마지못해 한곡정도를 부른다.
음치에 박자도 못 맞추지만 그냥 딱 눈감고 불러 제킨다.
노래를 부르면서 생각해본다.
음치인 내가 왜 노래방에 왔을까?
짜샤! 넌 노래방에 오는 거 죽기보다 싫어했잖아?
너도 어쩔 수 없이 늙어가고 있구나. 아내 말 순순히 듣는 걸보면!
그래 임마! 이렇게 사는 거야. 너 혼자 고상한 척 하지 마!
이제부턴 알량한 고집 같은 거 쓰레기통에다 버리고
마누라가 하자고 하는 대로 따라하는 거야!
이런 잡다(?)한 생각들에 노래의 박자가 맞을 리 없다.
술 취해 갈지자를 걷는 취객처럼 제멋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내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노래방 소원을 2년 만에 들어준 나.
정말로 이제야 철이 드는 것일까?
너무 내 방식대로만 살아왔다.
이제 나를 버린다.
<덧글>
"이제 나를 버린다"라고 끝 마무리를 그럴싸하게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께름직합니다.
오늘 저녁이라도 아내가 노래방 가지고 하면 또 추춤거리게 될 제 자신이 두렵습니다.
아~! 제발 아내가 눈치 채고 그런 말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ㅠ_ㅠ;>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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