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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반짝거리는 군악대 악기뒤엔 졸병의 눈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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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거리는 군악대 악기뒤엔 졸병의 눈물이 있다

<군악대 이야기 2>

 

<제1편> 최전방 소총수, 군악병으로 발탁되다. '로또'당첨일까? 

 

 00사단 전속부관실 멤버들과 함께 cpx 훈련중이었다. 제일 위가 일등병인 필자.

 

 

군악대생활 처음 한 달은 나는 ‘군인’이 아니었다.

잡역부였다.

잡역부는 군 내무생활의 제일 밑바닥 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나와 동기생 두 명이 해야 하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 선임병(약 20여명)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씩 맡아

  그들의 신상에 대한 일체를 책임진다. 쉽게 말해서 당번병이다.

* 자기가 맡은 선임병의 명찰(쇠붙이로 되었다)과 혁대 빠클과 구두, 병기,

  그리고 지급된 악기들을 윤이 나도록 닦아놔야 한다.

* 행사복은 세탁해서 칼날같이 주름을 세워 다림질을 해놔야 한다.

  전기다리미? 정말 팔자 늘어진 소리다.

  지금 동대문 고물시장에 나가보면 그런 다리미가 혹시 있을까?

  쇠붙이로만 된 삼각형 다리미다. 뚜껑은 없었다.

  산에 가서 솔방울을 주워서 불을 피워 집어 넣어야하기 때문에 뚜껑이 없는 것이다.

  매운 연기는 말도 못한다. 그래서 겨우 다리미가 달구어지면

  그때부터는 눈물 주룩 흘려가면서 선임병의 행사복 상의에서 바지까지

  칼날 같은 주름을 세워 다리기 시작한다.

  이 짓을 한 달 정도 하니까 우리 동기들은 요즘말로 다리미의 달인이 다 되었다.

* 내무반 청소는 티끌하나 없이 반들반들 해놔야 한다.

자, 그만 열거해야겠다.

일일이 말하기에는 끝이 없어 질린다.

 

우리 동기 세 명은 각오를 했다.

설마 제대하는 날까지 이 짓은 하지 않을 거 아니야?

참을 인(忍)자를 씹고 있으면 언젠가는 ‘쫄병’이 생길 거다.

그 때까지 만이라도 참고 버티자.

이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인데 어쩔 수 없잖아.

운명을 거부한다면 탈영뿐인데 그럼 탈영할 거야?

지금까지 해온 고생이 억울하잖아.

밤이면 몰래 모여서 두 손잡고 서로를 위로 했다.

 

솔직히 동기생과 다르게 나는 미술대학을 다니다 군에 입대했다.

창피한 일이지만 음악에 대해선 무지스러울 정도로 깡통이었다.

심지어 음표도 읽을 줄 몰랐고 그 음표하나가 몇 박자인줄도 몰랐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음악공부는 아예 접어버렸기에 당연했다.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겠지만 그 시절엔 그럴 수 있었다.

그런 내가 군악병으로 발탁되어 버젓이 군악대에 몸담고 있다니

정말로 아이러니한 인생이다.

장차 앞일을 생각하면 캄캄하기만 하고 암울하기만 했다.

 

 

 스자폰이란 악기다. 악기의 크기 때문에 행사 때는 군악대 맨 뒷줄에 있다.

스자폰은 항상 반짝반짝 눈이 부시도록 닦아 놔야한다. 

 

소위 군대용어로 “까라면 까야지 무슨 변명이야!” 식으로 말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까야했다.

묵묵히 트럼펫의 굴곡진 사이사이에 세척 약을 바른 마른헝겊을 끼어 넣어

찌든 때를 벗겨내고 광택유를 발라 윤이 날 때가지 힘을 주어 문질러야 한다.

“강이병!”

“녯!”

“여기 스자폰에 얼룩진 것은 뭐야?”

스자폰 선임병 김병장은 인상을 긁으며 악마 같은 이빨을 드러냈다.

“다시 닦겠습니닷!”

“이 새끼가.... 너 여기 들어 온지 며칠 됐어?”

“22일 되었습니다”

“22일 됐으면 도가 텄어야 되는 거 아니야? 이 병신새끼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김병장의 반짝이는 군화 앞굼치가 내 정강이에 번개불을 붙였다.

순간 정강이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악! 소리도 지를 수 없다.

나는 앞으로 허리를 굽히며 정강이를 두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얼핏 김병장의 구두를 보았다.

그 군화는 내가 오늘 아침에 반질반질하게 닦아 놓은 바로 그 군화였다.

자존심?

자존심은 이미 구겨버린지 오래였다.

나는 살아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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