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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뒷골목의 추억
무심코 전화번호 수첩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 속에 들어있는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빛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러스트레이터 '강인춘'
그는 내게 어떤 느낌으로 남아 있을까?
그한테는 늦가을 해질 무렵 시골 농가의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오 오르는 저녁 연기같은 푸근함이 느껴진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일까?
그에게는 때깔 고운 도시 냄새보다는
어딘가 어눌하고 순박한 전원풍의 인간미가 풍겨 난다.
그렇다. 그는 자기가 그린 그림들과 참 많이 닮은 사람이다.
그가 그린 그림 속 주인공들이 오지그릇처럼 편안하고 유년 시절 함께 살았던
이웃을 보는 것 같은 정겨운 느낌을 주는 것처럼
그는 언제 보아도 따뜻한 사람이니까.
사실 그와 나는 얼굴을 맞대기 전부터
이미 오랫동안 글과 그림으로 만나 왔다.
그가 새내기 시절 내 형편없는 동화를
특유의 서정적이고 향토적인 멋진 그림으로 빛내준 까닭에
나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모임에서 그를 만나게 되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은빛 머리카락을 수줍게 손으로 쓸어 올리며 소년처럼 환하게 웃을 때의 표정 말이다.
게다가 웃을 때 살짝 보이던 덧니는 어딘가 짓궂은 아이를 연상케 하였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참 이상하다.
그 후 프뢰벨에서 그림동화를 기획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동화 작가의 이름을 모두 가린 채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고르라고 했을 때 그는 내 작품을 선택하였다.
그런 우연은 얼마 후 다른 출판사에서 비슷한 기획을 했을 때도 똑같이 일어났다.
내 작품의 빛깔과 향기가 그의 그림과 일치했던 걸까?
어쨌든 그렇게 나온 작품이 한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항아리의 비밀'과 '하늘 공주'였다.
그러나 정작 그와 내게 친해진 건 몇 년 전 내가 '소년동아'에
'실로폰 속의 아이들'이라는 작품을 일일 연재하면서부터다.
편집부의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서 내가 쓴 원고 를 그에게 직접 전해주기 위해
나는 외출할 때면 종종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으로 그를 찾아가곤 하였는데,
그해 봄부터 가을까지 그에게 원고를 전해 주며
'슈바빙'이라는 이름도 근사한 유리창이 넓은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대낮부터 술을 마시기도 하며 스스럼없이
친한 글쟁이와 그림쟁이가 되어 갔다.
그렇게 매일매일 연재하면서 나는 내가 쓴 글보다
그의 그림을 먼저 보며 아침을 맞았다.
그럴 때마다 난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정말로 타고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마치 족집게 무당처럼 내가 아무리 쓰려해도
필력이 모자라 쓰지 못했던 것들을 어쩌면 그렇게도 꼭꼭 집어내어 멋진 그림으로 채워 주었든지!
나는 그때서야 글과 그림은 다정히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는 단짝 친구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글과 그림이 단짝 동무가 되어 연재를 하는 동안 소문난 미식가인 그 덕분에
광화문 근처 술집, 밥집을 거의 섭렵하게 되었으니,
지금 남아 있는 건 원고료보다는 그와 함께 술잔을 들었던 광화문 뒷골목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라는 걸 문득 깨닫는다.
하지만 함께 했던 일이 끝나고 그이 사무실이 충정로로 옮겨간 후
우리의 만남은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사는 것이 '일'이라는 공통의 끈이 없으면
만나기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렇게 '동화 작가가 본 일러스트레이터'라는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그 때 그 시절처럼 그와 한잔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원고를 다 쓰고 그에게 "광화문 뒷골목에서 소주 한 잔 어때요?" 하고
전화를 걸어 봐야겠다.
설마 약속이 있다며 나를 슬프게 하지는 않겠지...
이규희 <동화작가>
먼지가 듬뿍 묻은 서재 책꽂이에서
우연히 찾아낸 일러스트 잡지에서 이규희씨의 글을 발췌했다.
<1997년 11월 ILLUST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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