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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아내와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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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나랑 다투고 나서 말 섞지 않으니 편해 죽겠지?”


아내랑 티격태격 다투고 나서 꼭 일주일 되던 날, 아내가 내 이메일로 편지를 보내왔다.

나와 싸운 뒤에 한마디도 하지 않고 꽁해 있던 아내는 처음 며칠간은 마음이 아주 편했던 모양이다.

남편이라는 남자의 뒤치다꺼리 사슬에서 벗어난 것이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메일에 시시콜콜 털어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끼니때마다 남편 해 먹일 국 걱정, 반찬 걱정을 더는 하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는 둥,

잘 때도 자기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방바닥에서 자니 침대가 운동장처럼 넓어 거칠 것이 없어서

오랜만에 이리저리 뒹굴며 잤다는 둥….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에는 내가 아무리 늦게 와도 자지 않고 기다렸던 아내는,

싸우고 나서 내가 술을 먹고 밤늦게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오거나 말거나 거실등이고 방전등이 다 꺼버리고

먼저 잠들어버렸다.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린다는 게 얼마나 고역스러운 일인지 아느냐”는 것이 아내의 변이었다.


아내가 털어놓는 ‘혼자의 즐거움’은 한두 가지로 끝나지 않았다.

매일 아침 당신이 출근할 때마다 양말이며 속옷, 와이셔츠까지 일일이 챙겨주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했는지 모른다며, 결혼하고 지금까지 내내 남편 시중드는 하인 같았던 신세에서 벗어난 기분을

아느냐고 아내는 투정을 부렸다.

격주마다 주기적으로 문안을 가야 했던 시댁도 싸움 핑계로 건너뛰니 기분 최고였다며,

급기야 이런 말까지 써놓은 것이 아닌가.

“나 바보였나 봐. 혼자 있으니 이렇게 편한 걸, 왜 결혼 못 해 아등바등했는지 몰라.”


하지만 아내의 진짜 속마음은 다음에 이어지는 편지 내용에 담겨 있었다.

“남편! 오늘까지 우리가 말 안한지 벌써 일주일이 되었단 말이야. 설마 우리 사이 이렇게 끝낼 것은 아니지?

 냉랭한 벙어리 같은 상태로 일주일 이상 보내는 건 나도 안 돼.

사실 겉으로는 편한 척했지만 솔직히 마음의 고통은 미칠 것 같았단 말이야.

자기가 먼저 사과하지 않을래? 부부싸움 하고 나서 여자가 먼저 사과하기는 좀 그렇잖아.

평소에 가슴 크다고 폼 잡던 자기가 먼저 사과하란 말이야. 치사하게 남자가 뭐 그러니?”





아내의 귀여운 사과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고는 곧장 답장 메일을 보냈다.

“그래, 사과는 내가 먼저 할게. 하지만 자기가 보낸 메일이 먼저 사과 글 아니었어?”

그러고는 나도 아내와 싸우고 나서 내가 겪었던 일과, 그때 느낀 감정들을 메일에 하나하나 써내려갔다.

솔직히 끼니때마다 밥통에 있는 밥을 알아서 혼자 퍼 먹는 내 행동이 너무 자존심 상해서

차라리 굶을까 하고도 생각해 봤지만, 한 끼라도 거르면 안 되는 내 성격이 미웠다는 것.

그리고 비록 아내는 침대에서, 나는 방바닥에서 따로 자기는 했지만,

 “부부가 각방 쓰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말 때문에라도 일부러 거실로 나가 자지 않았다는 것도.


이어지는 메일 내용에는 그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의 말도 슬며시 적어 넣었다.

“피치 못해 술 취해서 밤늦게 들어온 나 때문에 잠도 자지 않고 기다리게 만든 거 반성하고 있어.

다음부터는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당신 건강이 우선이잖아. 출근 때마다 속옷,

와이셔츠까지 일일이 챙겨준 것도 고마워. 생각해보니 나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이제부터는 내가 알아서 꺼내 입을게. 격주마다 시댁에 문안 인사드리러 가 주는 당신이 참 고마웠어.

엄마도 그동안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몰라. 하지만 이제 한 달에 한 번씩만 가자.

너무 일방적으로 내 생각만 했던 것 같아. 당신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안해.”


여보! 우리 가끔 다툴 때마다 이렇게 메일로 주고받는 사과, 이 방법 참 괜찮다.

남자인 내가 먼저 선수를 쳤어야 했는데, 역시 내가 당신보다 많이 모자라나 봐.

당신은 내 삶의 원동력이야. 사랑해!

< 월간 에세이 이번 달 8월호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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