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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남편이 일본인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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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는 블로그와 일본에서 사용하는 이름이고, 본명은 정현숙이다.

조선대학교 대학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고, 일본 도쿄코게이대학 예술연구과에서 예술학 학위를 받았다.

2011년 한국이 그리워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전생이 한국인이었다고 자부하는 일본인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솔직하게 쓰면서 뜻하지 않게

해외 거주자와 국제 커플들의 많은 응원과 관심을 받았고, 남편은 네티즌 사이에서 ‘깨서방’이라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이 책에는 그렇게 습관처럼 기록한 나의 일본생활, 내가 만난 일본인,

내가 겪은 일본 사회에 대한 단상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어쩌면 이 책은 그립고 그리운 내 나라를 가슴에 품고 케이라는 일본 이름을 사용하며 지내온 지난 16년간의

일본 생활에 대한 필자 나름의 결산일지도 모른다.

현재는 일러스트레이터와 임상미술사로 마음 치료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몇 년 후에 고향인 광주로 내려가 우동갤러리를 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남편은 우동을 빗고, 필자는 마음껏 그림을 그리며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




   석사논문 발표가 끝났을 무렵, 지도교수님이 일거리를 하나 주었다.

   모 건축회사로부터 설립 20주년을 맞아 회사 이미지 제고를 위한 BI작업의뢰가 들어왔는데

   내가 맡아서 해보라는 것이었다. 얼마 후 의뢰자의 연락처를 건네받아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은 뒤

   그 회사를 방문했다. 무테안경을 코밑까지 내려쓰고 미간에 주름을 세운 채 심각한 전화통화를 하고 있던

   의뢰인은 내가 온 것도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간단히 내 소개를 하고 바로 컨셉트와 시안들을 꺼내 설명을 시작했다.


   “일본에 언제 왔어요? 일본어를 참 잘 하시네요.”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고향이 어디예요?”

   “광주라고 남쪽에 있는 곳입니다.”

   “광주? 중국에 있는 광주는 들어봤는데… 한국에도 광주라는 지역이 있나 봐요.”

   “아, 광주라는 발음은 같은데 한자가 다릅니다.”

   “왜 일본에 왔어요? 공부하러 온 거에요? 한국에서는 전공이 뭐였어요?”


   참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호고조사를 시작하는 것도 그렇고 왜 일본에 왔냐는 질문엔 기분이 언짢았다.

   “네, 공부하러 왔고 한국에서도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아, 그래요? 잘 부탁합니다.”


   그렇게 첫 대면이 끝나고 나는 의뢰인의 회사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로고 디자인에 착수했다.

   꼬장꼬장한 의뢰인 덕분에 모든 직원들이 내 디자인을 만장일치로 통과 시킬 때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마침내 일이 마무리되고 디자인료가 입금되던 날 의뢰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디자인을 멋지게 해주었으니 지도 교수님과 함께 식사나 한 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교수님의 선견지명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약속한 날에 의뢰인과 들이서만

   식사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박사 논문을 쓰고 있던 내게 필요한 문헌들을 구해주기도 하면서

   계속 연락을 해왔고 우리는 만나는 횟수가 잦아졌다.


   마지막 박사논문 심사를 남겨두고 주말도 없이 학교와 연구실에서 밤을 새기 일쑤이던 어느 날,

   그가 불쑥 홍콩행 티켓을 내밀었다. 일본을 떠나 잠깐이라도 휴식을 취하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홍콩에 도착한 첫날에도 나는 호텔방에서 논문 발표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밤이 되어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우리는 2층 버스를 타고 번화가를 둘러보다가

   네온 빛이 은은하게 빛나는 작은 레스토랑을 찾았다.

   약간 시끄러운 실내에 울려 퍼지는 올드팝이 의외로 잘 어울리는 가게였다.

   뜨끈뜨끈한 소롱포와 함께 마시는 미온의 고량주 맛이 절묘해 자꾸만 술잔을 기울이는 속도가 빨라졌다.

   독특한 향신료로 범벅이 되어 나온 게 요리도 일품이었다.

   고량주 한 병을 다 비워갈 때쯤, 무슨 말을 할 듯 날 빤히 쳐다보던 그가 느닷없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랑 살면 잘 살 것 같아…”

   “…뭔 소리야? 왜 그런 말을 해, 갑자기?”

   “당신, 현수기(현숙)라는 여성과 살면 한평생 잘 살 것 같아. 아주 행복하게.”


   그건 분명 프러포즈였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그가 주문한 칠리새우만 열심히 먹었다.

   결혼 같은 건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무슨 소릴 하는 것이냐고 반박해야하는데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다만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 적당히 탄력 있는 새우 살이 신선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때 그가 다그치듯 물었다.


   “맛있지? 무슨 맛이야? 일본거랑 맛이 똑 같아?”

   “음… 아주 특별한 맛이야. 프러포즈 맛 같은…”




이 책의 저자 케이씨와는 몇 년 전에 서로의 블로그에서 댓글을 달면서 알게 되었다.

그녀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나 역시 미대를 졸업하고 시각디자인 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서로의 블로그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내 블로그의 연재작품 <썩을년넘들>에 주인공 할멈의 어설픈 전라도 사투리에

케이씨는 까탈스러운 반응을 보이면서 사투리를 제대로 알고 쓰라고 지적을 했다.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옳은 지적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수정 작업을 했다.

그녀의 친정엄마는 전라도 광주 토박이였다. 그랬기에 누구보다도 전라도 사투리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 연유로 내 책 <썩을년넘들>중 한 페이지는 그녀와 친정엄마간의 얘기를 실었다.


이후로도 나는 2,3일에 한 번씩 연재되는 그녀의 일본인 남편과 사는 이야기에 푹 빠졌다.

때로는 많은 악플에 지칠 만도 한데 그녀는 용케도 지금까지 블로그를 운영해왔고 드디어는 책도 출간하게 되었다.

그녀의 용기에 갈채를 던진다.


케이님의 블로그

http://keijapa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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