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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암이 할퀴고 지나간 상처 컸지만 다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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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 할퀴고 지나간 상처 컸지만 다시 일어났다

 

 

 

 

 

 

어제 내가 실고 있는 일산에서 아름답고 멋진 자신의 인생을 사는 불로거 'S'님을 만났다.
벌써 전부터 그녀에게 몇 번의 만남을 제의 받았었지만 솔직히 용기가 없어 주춤거렸다.
그러다 더 이상의 사양은 결례인 것 같아서 용기를 내어 만났었다.
맛있는 점심을 하면서 우리는 각자의 전문작업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나는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났을까? 

 

사실 나는 몇 년 간 사람기피증이 생겼다.
아니 좀 더 솔직히 애기하자면 암수술을 하고나서부터는 집 밖으로의 출입은 될 수 있는 한 꺼렸다.
그동안 몇 권의 책을 출간하고도 TV방송 등 신문, 잡지 등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어도 모두 다 사양했었다.
책을 홍보하기 위해서라면 욕심도 내볼 만 했지만 그럴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가족이나 지인들은 절대로 흉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단지 위로의 말로만 들렸다.

암은 내 얼굴 오른 쪽 이랫입술을 약간 삐뚤어진 모습으로 할퀴고 지나가 버렸다.

일종의 안면 장애자(?)인 나.
그 상처로해서 상대방의 시선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에 우선 자신감이 생기지 않아서 사람을 기피하곤 했었다.

성형수술로 고칠 수도 있었지만 이제 얼마 남지도 않은 인생인데
구태여 다시 얼굴에 칼을 댄다는 것은 정말 싫었다.
 

불철주야로 사회생활을 하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사람기피증이 생겼다면 정말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스스로도 참으로 용기 없는 바보처럼 생각되어 자신이 싫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암 수술한지도 어언 6년이 넘어가니까 조금은 낯두꺼워진 것 같기도 했다.
오늘의 'S'라는 아름다운 여성의 데이트(?) 요청도 응할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마침 이런 기회를 변명삼아 이참에 내가 꺼려했던 나의 병력을 공개한다.
2004년 11월이었으니 만 6년 6개월 전 얘기로 돌아간다.

서울대학교 치과병동 입원실 718호실.
내 얼굴엔 겨우 눈만 남겨놓고 온통 붕대로 칭칭 감겨져 있었다.

아내가 치켜세워준 침대에 나는 비스듬히 기대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경희궁의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과 붉은 단풍잎들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말 아름다운 한 폭의 가을 수채화였다.
하마터면 볼 수 없었던 세상을 다시 새롭게 볼 수 있다는 감회는 남달랐다.

 

'평평세포암종'. 나의 구강암 병명이다.
어느 날, 우연히 입속 오른쪽 볼에 생기기 시작한 조그마한 종기는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커져갔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사무실빌딩 2층에 있는 치과 의사에게 보였더니
의사는 두말도 없이 소견서를 써주며 지금 빨리 서울대치과병원으로 가보라는 것이었다.
느낌이 불안했다.
서울대치과의 담당의사는 즉시 입원통보를 했다. 그리고는  MRI에서부터 PET 촬영, 초음파검사,

세포조직검사 등 인내력이 필요한 10여 가지의 초정밀 검사를 3일에 걸쳐 마쳤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주치의로 부터 직접 '암(癌)'선고를 받았다.


- 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입속의 오른 쪽 볼에 사방 2센티의 정도의 암 종양이 보이는데 임파선이나
또 다른 부위에

   전이여부는 일단 수술로 종양을 제거하고 다시 세부적으로 체크해야 알 것 같습니다.
   외국에 나가있는 자제분들 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마치 임종을 앞두고 친지들을 불러 마지막 작별인사라도 하라는 투의 말이었다.
내 생애에 있어서 '청천벽력'이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란 것을 그 때 실감했었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현기증 같은 증세가 확 풍겨져 나왔다. 

 

- 아~ 이런 걸 보고 생의 마지막이라고 하는 구나...  지금까지 잘 버텨왔는데,

   아직 60대 초반의 나이. 여기까지가 내게 주어진 인생이었네...   

   그래, 살만큼 살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바로 체념상태로 빠졌다.

이렇게 쉽게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 자신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물론 선고를 받는 순간은 죽음에 대한 공포감도 없진 않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정말 일순간뿐이었다.

참으로 담담했다.

그리고 찬찬히 나를 돌이켜 보았다.

 

- 아들 딸 합해서 둘, 모두 결혼시켰다.  아내는 집 한 칸 남아 있으니

   그 걸로 살아 있는 동안은  자식 신세 안지고 살 수 있겠구나.
 

- 영원히 죽지 않는 인생이라면 내가 먼저 가니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누구나 죽는다는 것은 기정사실인데,

   뭘 안타까워 할 필요가 있나?  운이 좋았다면 몇 년은 더 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우주라는

   영겁(永劫)에 비하면  정말 눈 한번 감았다가 뜨는 것보다 더한 찰라 일뿐인데, 부질없는 욕심이다....
 

- 인도의 매력에 이끌려 세 번씩이나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인도인들의 두려움 없는 죽음의 사고가

   어느 새 나에게도 전이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렇게 죽음 앞에 초월할 수 있는 것인가?

 

 

                         

 


나 스스로도 신기하고 기특하기만 했다.
수술 전날 저녁에 간호 팀장에게 말하고 의사 몰래 몇 시간의 휴가를 얻었다.
바로 택시를 타고 마포의 내 사무실(작업실)로 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참으로 착착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겨왔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앉았던 의자였고, 늘 만지던 컴퓨터, 책,
그리고 그림화구들이었는데 오늘 따라 이렇게 낯설어 보이는 것은 웬일인가?
나에게서 벌써 이별의 눈빛을 감지했나? 그래! 잘 못 된다면 이 모든 것들과 영영 이별이 될지도 몰라...
 

책상서랍의 서류들을 꺼내 하나씩 정리했다.

누가 들어와도 찾아보기 쉽게 원탁회의 테이블에 오피스텔 권리증, 통장 등등을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고 A4용지 한장에다 이렇게 써 내려갔다.

- 나는 다시 이 방에 돌아 올수 있을까? 정말 올 수만 있다면........'

 

유서가 아닌 '마음의 글'을 서류 옆에 가지런히 놓고 사무실을 나왔다.
금방이라도 내려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의 별들이 이 밤 따라 참으로 아름답기만 했다.

 

 

                       

 

 

다음 날 아침.수술 집도 의사 3명, 마취과 의사 2명 합해서 5명의 의사가 

무려 15시간의 대 수술로 나는 죽지않고 다시 새 생명으로 태어났다.
오른 쪽 귀 밑에서 턱 밑 부분까지 메스로 길게 잘라 완전 뒤집어 놓은 상태에서

볼 안쪽에 달라붙은 암 종양을 떼어냈다.

그 자리의 움푹 파인 피부는 왼쪽 팔목의 피부를 떼어서 입속으로 이식을 했다.

팔목의 살은 대퇴부의 피부 살을 도려내어 이식을 했다.

대퇴부는 그냥 새 살이 돋아 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2센티도 안 되는 조그만 종양 덩어리가 온 전신을 상처투성이로 만들어 놓았다.

 

치과병동 718호실의 처음 일주일은 참으로 힘든 나날이었다.

왼쪽 팔목은 석고를 붙여놓아 꼼짝도 못한 상태에서 콧구멍으로 비닐호수를 위까지 집어넣어 음식물을 투여했다.

그 상태에서 끓어오르는 가래를 수시로 뱉어내야만 하는 것은 마치 지옥과 같은 고통이었다.
그러나 평소에 헬스를 꾸준히 해온 덕을 많이 봤다.

 

입원한지 17일 만에 퇴원 할 수 있었다.

암환자치고 그리 흔한 일은 아니라고 담당주치의 웃었다.
천운이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암환자가 된 병원의사 세분의 말에 동감한다.
어떤 병이든 일단 발병하면 환자 자신들은 자신의 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된다는 것이다.

병과 함께 공유하면서 즐겁게 생활하라고 했다.

그러는 사이 자연스럽게 병을 이기게 된다고...
왜 하필이면 나야?'라고 부정하거나 저항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의 나약한 의지로는....

 

나는 또 한 번 나 자신에게 다짐한다.

- 욕심을 내지말자.

- 그냥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자.

- 조금 더 살겠다고 구차하게 매달리지 말자.

- 나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게 보여 진다는 것은 너무 싫다.

 

죽고 사는 것은 신(神)의 마음대로지만 그러나 세상을 적극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먹기에도 달렸다.
오늘 S님을 핑계 삼아 숨기고 싶었던 내 병력을 얘기하고 다시 한 번 삶의 용기를 내어본다.
S님! 잠시나마 즐거웠습니다.

 

 

추천합니다

 

 

이벤트2.jpg

 

*송금하신 박현규님 이메일 주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림 원본구경하기 http://blog.joinsmsn.com/kic2806/1190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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