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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2

폼나게 설거지해놓고 아내에게 욕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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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까짓 거 별거 아니라고 만만하게 보았던 나의 실수였다.

우선 앞치마를 입고 폼(?)나게 빨간 고무장갑을 늘려잡아 끼었다.

그리고 식탁위의 빈 그릇들을 개수대에 갖다놓고 물을 틀어서 담갔다.

세제를 수세미에 푹 짜 넣고 물에 담군 그릇을 하나하나 꺼내 힘주어 닦고

닦은 그릇은 옆 개수대에 모았다가 다시 맑은 수돗물로 깨끗이 헹구었다.

나름대로 깨끗이 성의껏 열심히 했다.

 

“여보야! 설거지 끝냈다. 나, 멋있는 남편이지?”

감기가 든 것 같다고 침대에 누워있던 아내가 주방으로 나왔다.

그런데 웬일인지 눈썹이 꺾어졌다.

무엇이 못마땅한 건가?

아내는 씻어놓은 그릇들을 살펴보더니 나에게 눈을 흘겼다.

그리고는 내가 기껏 해놓은 설거지 그릇들을

몽땅 개수대에 쏟아 부었다.

 

“설거지하느라 애썼어. 고마워!

 그런데 두 번 일은 하지 말아야지,

옆에서 보기에 설거지하는 게 그렇게 쉽게 보였어?

자, 이 그릇들 똑똑히 봐.

얼룩진 세제가 씻겨 내려가지 않고 그대로 있잖아.

세제는 수세미에 몇 방울만 묻혀도 잘 닦이니까

조금만 묻혀서 흐르는 물에 깨끗이 행군다음에

마른 행주로 물기를 말끔히 닦는 거라고 그동안에도 여러 번 말했잖아.

당신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봐?

그런 머리로 어떻게 그런 일류대학을 나왔나 몰라.

그것뿐이 아니야. 설거지 끝냈으면

싱크대, 식탁까지 말끔히 닦고

주방바닥에 흘린 물은 다시 걸레질해야하고

냉장고 속은 물론 겉에까지 깨끗한 수건으로………”

 

아내의 훈시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설거지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

가사 일을 도와준다는 생각에서 하는 일이란 결국 이런 불상사를 낳는다.

설거지도 주인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것은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이다’라는 주인의식 말이다.

아내에게 열 번, 아니 백번 욕먹어도 싸다.

설거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내를 다시 본다.

여자들 대단하다.

<곧 발간될 '써글년넘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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