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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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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어린이 잡지 '저요저요' 되돌아본 삶 '창간 어린이잡지' 1998년 12월에 신문사를 퇴직하고 곧장 마포 공덕동에 '꽃바람' 디자인 사무실을 오픈했다. 2000년 봄 '어린이문화진흥회'로부터 '저요저요'로고와 표지화를 포함해서 창간잡지 일체의 디자인을 의뢰해 왔다. 동글동글한 일러스트에서 각으로 변신한 일러스트는 이 때부터 시작 되었다. 바로 엊그제 같았는데 어언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디자인 사무실 '꽃바람' 되돌아본 삶 디자인 사무실 '꽃바람' 서울, 마포 공덕동에 '꽃바람' 디자인 사무실을 오픈한 지 며칠 안되어서 글쓴이는 극성 엄마가 아이들 넷을 데리고 미국 유학을 간다는 내용의 표지 그림과 장정(裝幀)을 나에게 부탁해왔다. 잠시 생각하다 즉석 스케치를 해서 글쓴이로부터 만족스러운 'OK' 사인을 받았다. 그 뒤 본문 디자인, 인쇄, 제본에서 납품까지 일사천리로 기분 좋게 진행됐다. 2002년, 그러니까 21년 전의 추억이다.
저요! 저요! 2000년(22년전) 어린이 문화진흥회 발행 직각으로 된 그림의 선(線)은 여전했다. 아마도 10여년은 더 그렸던 것 같다. 지금도 나의 일러스트를 보면 아직도 직각선의 여운은 남아있다. 어린이 문화진흥회에서 발간되는 창간호 '저요저요' 표지 일러스트 역시 직각선으로 이루어 졌다. 직각의 일러스트는 어색한걸까?
꿈은 이루어진다 평소에 늘 하고 싶은 예쁜 꿈이 있었다. 내 손으로 직접 그려서 내손으로 디자인한 예쁜 책을 만들고 싶었다.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신문사를 정년퇴직하고 마포구 공덕동에 예쁜 북디자인 사무실을 오픈했다. 상호도 앙징맞은 '꽃바람'.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꿈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소설집 제작을 의뢰받았다. 우리가 잘 아는 '별', '마지막 수업'등의 단편집이었다. 마음이 설레였다. 내 손으로 일러스트를 그려서 내 손으로 장정을 꾸며 내 손으로 북디자인해서 인쇄 까지 마무리했다. 당시의 '꽃바람' 대표 백발의 남자는 나이 60이 갓 넘은 청춘(?)이었다. ㅎㅎ
'三國志' 한 권으로 독파한다 '三國志' 한 권으로 열 권을 독파한다! 어떤가? 솔깃하지 않은가? 바쁜 현대사회에 '三國志' 그 많은 10권을 어느 시간에 독파할 수 있는가. 2000년 3월의 어느 날. "한 권으로 예쁘게 만들어 주세요" 나는 해누리 출판사 유주 간으로부터 한 권으로 축약된 삼국지 원고를 넘겨받았다. 그 시간부터 디자이너들과 함께 머리에 수건을 싸매고 축약된 한권을 마치 열 권처럼 신들리게 제작을 끝냈다. 2000년 1월의 이야기였다.
지루한 그림 그리기 수천 개의 꽃잎들, 그리고 남자, 여자들. 꼬박 3일을 그렸다. 꽃잎들이 작아 눈이 아팠다. 괜히 시작했다. 후회했다. 불과 A3의 사이즈의 켄트지에 내 인내심을 테스트했다. 드디어 마지막 꽃잎을 그리고나서 펜을 내던졌다. 다음 순간, 늘어진 내 몸을 일으켜 세움과 동시에 찬란한 환희의 물결이 내몸을 확 덮쳐왔다.
잡지 '저요, 저요!' "자 다음 문제는 누가 풀까요?" "저요! 저요!" 2000년 봄 아동 잡지 '저요, 저요'의 타이틀은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 . 발행인 아동문학가 이영호 씨는 당시 '꽃바람'디자인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던 나에게 월간지 표지 및 창간 일체의 디자인 작업을 의뢰했었다. 22년 전의 일이다.
열정의 추억들 2 1998년 12월 23년 세월을 보낸 신문사를 그만두고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조그마한 디자인 사무실 '꽃바람'을 오픈했다. 주로 작업은 각종 출판물의 '일러스트'와 '북 디자인'이었다. 2004년까지 6년 동안은 상상외로 작업량이 많아 시쳇말로 정말 잘 나가는 호화 사업(?)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해 운명의 '구강암'의 대수술로 사무실을 접고 집으로 철수했다. 나의 전성기는 거기까지였다. 누구 말대로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