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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태어나서 처음 맞아 본 군대 빳다, 뼈속까지 아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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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 맞아 본 군대 빳다, 뼈속까지 아른했다

<군악대 이야기 3>

 

<제1편> 최전방 소총수, 군악병으로 발탁되다. '로또'당첨일까? 

<제2편> 반짝거리는 군악대 악기뒤엔 졸병의 눈물이 있다 

 

 

    추천!

  

 

 

두 손바닥으로 맨 땅을 짚었다.

그리고 동시에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 올렸다.

마치 삼각형 모양의 아치형처럼.

앞 선임 병의 빳다(bat.베트의 일본식 발음이지만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소리나는대로 쓴다)

맞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재현해낸 내 모습이다.

저녁 식사후 30여명의 군악대원이 도열해 있는 연병장주위는 쥐죽은 듯 정적이 흘렀다.

이제 곧이어 각목(야전침대의 버팀목)으로 내려칠 빳다의 공포로 내 엉덩이는 온 산경이 집중되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나 그 침 넘어가는 소리가 왜 그렇게 크게 들렸는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21년을 살아온 나는

지금까지 남에게 맞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나를 키워준 부모에게도 손찌검 한번 당하지 않고 자랐다.

그만큼 나는 모범적으로 살아온 착한 학생이기도 했다.

남에게 매를 맞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을 할 수없는 치욕적인 모독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들은 군에 입대를 하고나서부터는

한낱 허상들에 불과했다.

 

논산훈련소의 훈련병 생활은 한마디로 혹독한 훈련, 배고픔,

그리고 구타가 일상화되는 특별구역이었다.

마치 지저분한 돼지우리와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끝까지 살아남았어야했다.

내가 스스로 자원해서 들어 온 군대였기에 더더욱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한시 바삐 고고한 나를 버리고 돼지우리 속에 뛰어들어

그들 무리들과 같이 생각도 없는 식충이로 다시 태어나야했다.

귀싸대기로, 군화발로 후려 맞으면서 그리고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앞으로 2년 6개월... 30개월.., 913일...

제대하는 그날을 지금부터 손가락으로 헤아리고 또 헤아리고 있었다..

적어도 60년대 초의 군대는 그랬다.

 

각목을 쥔 김병장의 손이 하늘을 찍더니

휘익~! 바람소리를 내며 내 엉덩이를 향해 사정없이 내리쳤다.

“으음~!”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내 엉덩이는 춤을 덩실 추었다.

그 진폭이 유난히 커서 엉덩이 앞부분이 땅에 닿았다.

순간 아프다는 생각이 앞섰지만 그 생각은 바로 사치였다.

두 번째로 내려치는 각목을 고스란히 받기에도 바빴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세 번째 빳다가 연이어 내 엉덩이에서 불을 뿜었다.

나는 세 번째 빳다에서 결국 손을 앞으로 뻗은 체 그대로 땅바닥으로 철퍼덕 엎어졌다.

빨리 일어나야한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기를 수 초간 정적이 흘렀다.

누가 일으켜 세워주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스스로 절뚝거리며 일어나야했다.

엉덩이는 뼈속까지 묵직하게 아픔이 전해져왔다.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뒷걸음질로 겨우 대열의 내 자리로 비틀거리면서 끼어들었다.

어느 새 나는 '차려'의 부동자세가 되어있었다.

 

나, 인간 맞나?

인간이 왜 이렇게 비열해지면서 맞아야하는 걸까?

한번의 반항도 못하고 그냥 바보처럼 얻어만 맞다니...

사나이가...

그 놈의 자존심은 어디로 간 거야?

자존심 좋아하네.

군대잖아? 잊어먹었니? 짜샤!

그래도 억울했다.

 

그러나 한편 신기했다.

훈련병 5개월 전방 소총수로 1개월 그리고 군악대생활 불과 며칠.

나는 너무나도 순하게 반항하지않고 잘 적응해갔다.

‘여긴 군대다’라는 쇠뇌가 이렇게 빨리 나에게 전염되어왔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질 않았다.

그래, 잘해내고 있는 거야. 멋지게 군대생활에 단련되어가고 있는 거야.

그것은 나만의 최면술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날의 빳다행사는 단체기압이었다.

행사장에서 한두 명 군악대원의 실수로 연주곡이 엉망으로 되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단체기압은 내무반에 남아있던 우리 신병과 행정반에 남아있던 대원들도

당연히 함께 받아야하는 억지 군대식 룰이었다.

 

밤이 꽤 깊었다.

내무반 침상에서 누워 막 잠이 들려는 나에게

조금 전 삣다를 때린 김 병장이 다가왔다.

그리곤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강이병! 앞으로 빳다 맞을 때는 빤스 속에 수건을 두텁게 넣어라. 무슨 소린줄 알았지?”

<계속>

 

 

행사장에서의 군악대

 

 Daum view

 

     

 

 

 

시어머니, 친정엄마! 둘다 내 이름이다.

내 딸이 아프면 며느리도 아프다. 내 딸이 귀여우면 며느리도 귀엽다.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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