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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목 부러진 선풍기, 테이프 감아 살려낸 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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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부러진 선풍기, 테이프 감아 살려낸 쾌거 

 

 

 

상처뿐인 영광인가? 부러진 목에 스카치 테이프로 칭칭 감은 선풍기가 안쓰럽다,

 

 

“당신, 그림 그리는 거 외엔 할 줄 아는 게 뭐 있어?”
아내가 툭하면 네게 하는 말이다.
그렇다.
아내에게 이런 소리 백번 들어 싸다.
나는 내가 생각해봐도 참으로 한심한 남자다.

 

* 벽에 시멘트 못 하나 제대로 박아 본 적이 없다.
  (시멘트 다뤄 본 사람은 잘 안다.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아무리 중심을 잡고 망치를 때려도 못은 벽속에 박히기는 커녕 휙 팽개쳐 나가버린다.
  표구 그림을 많이 걸어야하는 나에게 이건 참 고역이다)
* 천정의 전열 기구 바꿔 달려면 온 몸이 후들후들 떨린다.
  의자 같다 놓고 주방에서 쓰던 고무장갑 끼고 아내를 불러
  조수 역을 맡게 해서 나를 지켜봐야한다.
* 컴퓨터 뒤의 선 하나를 제대로 암기해서 끼우지를 못한다.
  어떤 것이 인터넷 선이고 어떤 것이 USB선이고 어느 것이 전류선인줄
  구별을 못해 일일히 그림으로 그려 메모를 해야 된다.
  (이것은 컴퓨터의 메카니즘을 모르기 때문이다)
* 집안 청소는 아예 손을 못 대게 한다.
* 세탁기는 그 조작방법이 복잡해 포기했다.
* 설거지는 어쩌다 겨우 하지만 결국엔 아내가 싫은 소리하면서 다시 한다.

 

이 밖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일이 열거하기가 창피할 정도다.

그러나 나는 나대로 변명할 말이 많다.
“원래 천재는 하나밖에 모른다”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말마따나 천재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그일 밖에는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림 그려서 신문, 잡지, 컴퓨터에 올리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런 내가 오늘 기가 막힌 일 하나를 처리했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지는 바람에 옷 방구석에 있던 선풍기를 꺼냈다.
아뿔사! 그런데 그 선풍기가 목이 부러진 선풍기였다.
작년 여름이 거의 지날 무렵 방바닥에 넘어져 목이 부러져
너덜너덜 하던 선풍기인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진즉 버렸어야하는 걸 그냥 커버 씌워 구석에 처박아둔 걸 몰랐던 것이다.
플러그를 전기코드에 꽂았더니 날개가 돌아가긴 했지만
고개를 땅바닥으로 처박고 있었다.
플라스틱 목이 크게 부러져 똑 바로 세울 수가 없었다.
작년 여름철이 시작하자마자 새로 산 것이라 버리기도 너무 아깝지만
별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냥 버려?”
평소의 성격 같았으면 쓰레기통에 버리고
당장 전자상가에 나가 새로 하나 샀겠지만 나도 이젠 성질 다 죽었나보다.
무엇이든 오래되고 고장이 났다하면 무조건 버리고 새로 사고 보는
악습이 어디로 간 것일까?
나이가 들다보니 그 세찼던 성질도 정말 다 죽었다.

 

 

 

바로 요 녀석이다.

 

우선 스카치 테이프를 준비했다.

 

 

부러진 목을 꿰어 맞춰 무지막지하게 돌려 감았다.

 

 

 

 

 

차분히 방바닥에 주저앉아 선풍기를 붙들고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부러진 선풍기의 목을 들고 이리저리 꿰어 맞췄다.
그리고 스카치테이프로 무조건 칭칭 감았다.
무지막지할 정도로 수십 번을 휘둘러 감았다.
이제 고개가 제대로 세워졌다.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했다.


 

 

보라! 쌩쌩하게 잘도 돌아간다.

 

 

드디어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았다.
선풍기는 씽씽 돌아갔다. 전후, 좌우로도 잘 돌아갔다.
목에 두텁게 스카치테이프를 감은체로 말이다.
꼭 내 신세와 똑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암수술로 목에 수술 칼을 대고 피부를 뒤집었다가
종양을 제거하고 다시 꿰매어 정상이 된 것처럼 말이다.

크하하하...
아내가 집에 없었기에 말이지 누가 보면 정신병자인줄 알 정도로
크게 웃어대었다.
선풍기나 나나 상처뿐인 영광의 얼굴이다.
“그래, 너 신세나 나 신세나 똑 같구나.
 얼마나 견딜지는 몰라도 당분간은 이렇게 씽씽 돌자꾸나“

 

아내가 집에 돌아오면 큰소리로 자랑할 일이 하나 생겼다.
정말 내 자신이 신통방통하다.
괜히 기분이 들떠 아무 일도 못하고 있다.

이 나이에 참 철없는 남자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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