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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아들 부부가 집에 와도 손님처럼 대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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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5월 16일) 중앙일보에 실린 강춘부부의 인터뷰 기사

 

아들 부부와도 손님처럼 대접, 고부갈등 없애려고요

 

 

 

부부는 ‘다행’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만큼 견뎌온 게 다행”이고 “지금껏 잘 헤쳐온 게 다행”이란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 강인춘(69)씨와 아내 김현실(63)씨. 결혼 41년차 베테랑 부부의 대답은 내내 조심스러웠다.
경기도 일산 이들의 집을 찾아간 부부의 날(21일)을 앞두고 행복한 결혼의 비법을 묻기 위해서였다.
강씨는 2004년부터 결혼생활의 희노애락을 그림 에세이로 풀어놓고 있는 인기 블로거다.

그동안 그의 블로그(blog.daum.net/kangchoon    blog.joinsmsn.com/kic2806)방문객수는 1500만 명을 넘어섰고,

호평을 받은 그림들을 모아 <여보야> <우리, 부부야, 웬수야?> 등 네 권의 책을 펴냈다.

 

신간 <자기는 엄마 편이야? 내 편이야?>는 중국에 수출계약을 맺었다.

그림 속에서 부부는 시시때때로 갈등과 긴장을 겪으면서도 소중한 동반자로 성장해간다.

모델이 되는 이들 부부의 실제 삶이 궁금했다.
하지만 이들은 행복 비법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았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아슬아슬 외줄타기 같은 결혼생활의 비밀이 그 ‘소심한’ 대답 속에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1970년 9월 5일 결혼했다. 만난 지 꼭 석 달 만이었다.
첫 만남은 서울 충무로 한 막걸리집 개업식 자리에서였다. 두 사람은 막걸리집 친구로. 후배 자격으로 동석하게 됐다.

강씨는 한눈에 김씨가 마음에 들었다.

카운터 직원에게 명함을 주며 “저 가죽점퍼 입은 여자에게 전해 달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강씨가 KBS미술부에 근무할 때였다. 명함을 건네받은 김씨는 다음날 강씨의 회사로 전화를 했다.

사진을 전공한 김씨는 “미술하는 사람을 알고 지내면 좋을 것 같았다”고 했다.

 

김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강씨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사무실에 걸어놓은 사진 작품의 작가가 바로 김씨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68년 국전에 작품 세 점을 출품해 한 점이 입선했다. 낙선작들은 출품자가 기간 내에 찾아가지 않으면

당시 문화공보부에서 알아서 처리하게 돼 있었다. 김씨의 낙선작이 바로 그 경우였고,

강씨는 알고 지냈던 문공부직원에게 그 작품을 건네받아 사무실에 걸어뒀던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인연이었다.

 

그 뒤 두 사람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만났다. 결혼까지 일사천리였다.

결혼식도 세간의 화제가 됐다. 신부가 종이드레스를 입어서였다. 디자인은 신랑이 직접 했다.

소문을 들은 신문, 잡지 기자들이 식장에서 취재 경쟁을 벌였고,

김씨는 ‘한국 최초로 종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로 유명해졌다. 남부럽지 않은 출발이었다.

 

하지만, 결혼의 환희는 거기까지였다.

6남매 중 맏아들과 결혼한 김씨는 시할머니, 시아버지, 시어머니에 다섯 명의 시동생, 시누이와 모두 한 집에서 살아야했다. 신부 김씨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다복한 대가족 생활이 아니라 매운 시집살이였다.
“아무 이유를 모르겠는데, 시어머니에게 미움을 받았어요. 밥상 앞에서 남편과 나란히 앉아본 적도 없었죠.

부모님 옆자리가 남편 자리였으니까요”
억울하고 속상한 일 연속이었지만 남편 강씨는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런 줄 모르고 시집 왔느냐”  “한 살이라도 어린 사람이 이해를 해야지”등으로 대꾸를 해주는 건 그나마 나은 상황이었다. 김씨가 무슨 말을 할라치면 “쓰으~“하는 소리를 내며 입막음을 했다.

결국 1년이 안돼 분가를 했지만 주말마다 부모님 집에 가야 했다.

고부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졌고 부부 싸움 강도도 더욱 세졌다. 그래도 두 사람 사이가 깨지지 않았던 건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로 싸우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밖에서 만나 싸웠죠. 귀가할 때는 맛있게 외식하고 들어오는 척했고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김씨의 고부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아흔이 넘은 시어머니와 환갑이 지난 며느리는 아직도 서로 껄끄럽다. 답답한 현실이다.

하지만 부부사이는 더는 고부 갈등에 휘둘리지 않는다. 남편 강씨가 변한 게 가장 큰 이유다.
“결혼한 지 20년쯤 되니 보이더라고요. ‘우리 어머니가 아들에 대한 욕심이 너무 크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어느 날 또 시어머니에 대한 불만을 터트리는 아내에게 강씨는 “우리엄마는 왜 또 그러시지?

때론 부모가 웬수야”라고 일부러 맞장구 쳤다.

그날을 떠올리며 김씨는 “내 가슴이 도리어 덜컹 내려앉더라”고 말했다.

 

윗대와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대신 두 사람은 그 고통을 다음 대(代)까지 물려주지 않으리라 결심을 했다.
“윗물이 맑으면 돼요. 아랫물이 아무리 흙탕물이라도 위에서 계속 맑은 물을 흘려 내려 보내면 아랫물도

서서히 맑아지게 마련이잖아요”

두 사람은 97년엔 아들을, 4년 뒤엔 딸을 결혼시켜 ‘윗물’이 됐다. 손자(초등4)와 외손녀(초등1)도 얻었다.

시부모든 처부모든 자녀를 결혼 시킨 뒤엔 뒤로 빠져야 한다는 게 두 사람의 소신이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생활에서 재미와 보람을 찾는데 에너지를 찾는다.

 

강씨는 블로그에 매일 작품을 한씩 올리면서, 김씨는 30년 넘게 계속해온 수영으로 심신의 건강을 챙기면서

삶을 즐긴다. 물론 손자가 보고 싶어 “다음 주에 애 데리고 놀러 와라”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도 있다.

하지만 입 박으로 내뱉지는 않는다. 또 아들네 식구들이 와도 부엌일은 김씨가 전적으로 맡는단다.

“내 살림이니 내가 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강씨는 “자식을 오라 가라 하면서 한 달에 몇 번 왔느니, 몇 번 전화했느니 세는 부모는 삐뚤어진 부모”라면서

“자식에게 손 벌리기 시작하면 분란의 씨앗이 되니, 부모가 노후 준비를 단다니 해야 된다”고 말했다.

스스로 일흔을 눈앞에 둔 노인이면서 이토록 ‘과격한’주장을 하게 된 데는 아직도 고부 갈등이 세태가 한 몫 한다.

그는 “시어머니와 서로 욕하고 싸우고... e-메일로 댓글로 갖은 사연들을 접한다”며

“고부 갈등의 매듭을 풀 수 있게 너나없이 마음 내려놓는 연습을 수도 없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일일보 글. 이지영 기자 / 사진. 김성룡기자>

 

*5월 21일 부부의 날을 맞아 오늘자(5월 16일)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가감없이 원문 그대로 옮깁니다.

 저의 실체가 그대로 들어나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어렵고, 아슬아슬한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부부, 고부의 갈등을 겪는 이들을 위해 솔직히 우리 부부 자신의 실체를 털어놓았습니다.

 갈등을 겪는 부부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추천합니다

 


송도순(성우, 방송인)
나도 시어머니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엊그제 며느리였었는데 말이에요.
지나간 과거사 되풀이 않는 게 요즘 대우받는 시어머니라면서요?
며느리 잡아놓고 “나 옛날에는...”하는 꼰대 시어머니는 질색입니다.
간섭하지 말고 그냥 풀어놔두세요. 요즘 며느리들은 지가 다 알아서 합니다.
강춘님 책 엉클어진 고부 속 다 풀어냈습니다.

 

책 구경하기

                                      http://blog.daum.net/kangchooon/113  

                       중국어 번역판으로도 출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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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금하신 박현규님 이메일 주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림 원본구경하기 http://blog.joinsmsn.com/kic2806/1190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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