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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성냥개비로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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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개비로 그림을 그립니다"

 

 

                                성냥개비를 거꾸로 잡고 그림을 그린다


나에겐 그림을 그릴 때마다 즐겨 쓰는 또 하나의 붓이 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냥개비이다.
무슨 생뚱맞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성냥개비는 서슴지 않고 켄트지 위를 제멋대로 휘저어가면서
내 마음을 판박이처럼 옮겨 놓으니,
나는 그를 이름하여 '성냥개비 붓'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매우 아끼며 사랑한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그 언젠가부터였다.
모 출판사에서 특이한 책의 그림 청탁을 받았다.
내 그림의 단순한 '컷'들을 모아 주니어를 위한
노트 형식의 책으로 출간하겠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기획이라 기꺼이 응했다.

 

팔에 힘을 빼고 가는 선으로만 이어서 여인을 그렸다.

 

 

그리고 그냥 평소의 습관대로 펜이나 붓으로 시작할까 했지만
이번엔 좀 색다른 도구로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우연히 책상 한쪽 귀퉁이에 널려져 있는
성냥개비를 보았다.

"글쎄…."

성냥개비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화약고 있는 쪽을 손 안으로 해서 거꾸로 잡았다.
성냥개비 끝쪽에 먹물을 찍어 켄트지 위에 '주욱~' 그어 보았다.
선의 흐름이 곱질 않고 울퉁불퉁 멋대로 흘렀다.
다시 손에 힘을 빼고 천천히 성냥개비를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돌려가면서 그었다.
순간 머리 끝이 쭈볏해지면서 나는 탄성을 지르고야 말았다.

"그래! 그래… 이거야!"

 

굵고 가는 선이 함께 하면서 완성 되어진 그림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던간에
항상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나는 지금 이 시간 한 장의 하얀 켄트지를 책상 위에 가지런히 펴 놓았다.
그리고 붓(성냥개비)을 들어 먹물을 듬뿍 찍었다.
가슴이 뛴다.

성냥개비를 쥔 손에 가는 경련이 인다.
순간 삶의 희열을 느낀다.
아직도 붉은 피가 내 가슴을 치고 있다는 격동의 고동소리를 듣는다.
나는 살아 있다.

하얀 켄트지의 흰 여백에 정열을 쏟는다.
내 마음 그대로 숨김없이 쏟아낸다.
성냥개비는 조용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춤을 추고 있다.
어느 덧 그 곳엔 내 마음이 활짝 펼쳐져 있다.

 

성냥개비 열개가 소멸된 그림. 터치가 자유로워 끝이 쉽게 닳았다.

 

 

모필이나 펜도 각기 나름대로의 필체가 있지만
성냥개비는 상당히 특이했다.
성냥개비의 끝에 먹물을 듬뿍 묻히느냐,
살짝 묻히느냐에 따라 생각하지도 못한 터치가 만들어져 나온다.

굵었다가, 가늘어졌다가 아니면 할퀴고 지나간 듯 거칠어졌다가,
다시 끊어질 듯, 겨우 이어져가는 먹선의 맥박이
내 호흡을 숨막히게 한다.
그리하여 더러는 바보처럼 실눈을 뜨면서
무아지경에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성냥개비로 쓴 글은 특히 그 구성이 꽉 차있어 재미 있다.
가로로 정렬된 것이 아니고 글과 글사이의 여백에 따라 글씨의 크고
작음이 잘 배치되어 한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이 그린다.

 

 

성냥개비 붓'은 될수록 멀리 꼭대기의 동그란 화약고
부분 쪽을 팔의 힘을 빼고 '사알짝' 잡아야 한다.
힘을 빼면 뺄수록 그 매력은 더하다.
그러면서 때로는 성냥개비를 돌리기도 하고, 곧추 세우기도,
뉘이기도 하면서 굵고 가늘기를 임의대로 선택할 수 있다.

 

성냥개비 그림으로 출간된 책의 한부분.

 

 

어느 때는 하도 살짝 잡아 팔의 경련을 일으킬 때도 있다.
그래서 그 경련이 그대로 먹선으로 옮겨지면서 묘한 터치로
켄트지 위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 것이 바로 '성냥개비 붓'의 진짜 매력이기도 하다.
경련이 클수록 그림은 귀신처럼 살아난다.

그림뿐이 아니다.
글씨도 멋지게 그려 낸다.
그래서 나는 글씨를 쓰는 게 아니고 그림처럼 그려나간다.
지금까지 글씨를 쓴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나에게서 글씨는 정말 그리는 것이다.

"글씨를 그린다구요?"
"그럼 글씨를 씁니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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