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부2

노래 ‘여자의 일생’ 판박이, 이 여인을 어찌할까요?

728x90

 

 

 

 

 

노래 ‘여자의 일생’ 판박이, 이 여인을 어찌할까요?

 

 

 

 

우연히 강춘선생님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읽는 동안 심장이 떨리고 눈물이 한 방울씩 흐릅니다.

 

갓 대학을 입학하고 채 한 달이 지나지 않고 남편을 만났습니다.

전 대학생이었고 남편은 사회인이라 나와 다른 게 너무 많았고 나이차이도 많이 났습니다.

그러나 너무 사랑해서인지 철이 없어서인지 만난 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임신을 하게 되었고 남편과 전 너무 힘들었습니다.

남편 식구들도 알게 되었을 때 제 핸드폰에선 차마 내뱉지 못할 욕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친정 부모님께는 한마디 말도 못 꺼내고 우리들만이 유산 결정을 내렸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수술대에 누워 숫자를 세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수술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병실모습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취 중이었는데 중간에 깼습니다. 전 소리를 질러댔고 소리치며 울었습니다.

간호사 두 명이 제 몸을 부축에 대기실 방에서 뉘였습니다.

포도당주사를 2시간동안 맞았습니다. 2시간 내내 울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가 흘릴 눈물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 긴 시간을 보내고 나왔을 때 남편은 복도 의자에서 졸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단 2시간 30분을 참지 못해 곯아떨어진

그 사람을 보며 또 다시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 뒤로 헤어지려고 몇 번이나 싸웠지만 결국 헤어지지는 못했습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바보처럼 또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는 그 고통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차마 부모님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친구 집을 전전했습니다.

동생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울먹이며 한 마디 합니다.

"언니... 그냥 수술 하면 안 돼? 엄마 아빠가 매일 저녁이면 언니 때문에 울고 있어..."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동생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넌 그렇게 쉽게 말 할 수 있어도 난 너무 힘들어. 그런 말 할 거면

다신 나한테 전화하지 마. 라며 못된 말을 퍼부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남편과 함께 겨우 친정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느새 부모님의 마음은 약해지셨습니다.

마침내 양가의 허락이 떨어지고 상견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상견례가 끝나자

친정어머니가 화가 나셨습니다. 아버지는 남편과 저를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상견례자리에서 시아버지가 아들을 친정아버지 회사로 출근하도록 말해두었다고 했습니다.

친정 부모들은 기가 막혔습니다.

 

그 해 추석이 왔습니다. 시댁에서 이번 추석은 친척들에게 인사할 겸 오라고 하십니다.

남편이 차가 없어 시동생 차를 차고 갔습니다.

차안엔 저와 남편 시동생 그리고 동서와 남편 쪽 친척시누이가 타고 있었습니다.

차안에서 친척시누이가 임신 몇 개월이냐 묻습니다. 5개월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몇 살이냐고 묻습니다. 제 나이를 대답하자 떨떠름해 합니다.

 

"존댓말 써야하나?"

남편이 대답합니다.

"당연하지. 내 와이프 될 사람인데."

또 친척시누이가 답합니다.

"아직 결혼 할지 안할지 모르는데 존댓말 안 써도 되잖아."

운전하고 있던 시동생이 답합니다.

"맞아."

순간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난 지금 뱃속에 아기가 있는데... 그럼 결혼을 무르고 아기를 지울 수 도 있다는 건가?

그런 가시 박힌 말을 한 것에 어이가 없어서 남편을 쳐다봅니다.

남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안합니다.

 

            

 

우리 세 식구가 살 집이 필요해 고민 하던 중 임대아파트를 얻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입주를 하려면

6개월이나 기다려야 했습니다. 제 배는 점점 많이 불러오고, 어머니는 남들이 볼까

걱정하셨습니다. 남편과 전 어쩔 수 없이 입주 할 때까지 머무를 집을 구하려 다녔습니다.

 

원룸을 알아보았지만 월세가 평균 40-50만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난리가 나셨습니다.

그런 비싼 집을 얻으면 어떻게 먹고 사냐고 소리를 지르십니다.

 

눈치를 채신 친정아버지께서 집을 대신 구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보증금과 월세도 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단 6개월만 살 건데 원룸보다는

오피스텔을 구했습니다. 보증금 5백만 원에 월 45만 원 임대였습니다.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아 산후조리 겸 친정 가까이 구했습니다.

오피스텔로 이사하고 난 이후로 시댁에서는 전화 한 통 안 왔습니다.

저 역시 전화를 하지 안했습니다.

이전 추석에 생긴 일과 집구하면서 생긴 일로 너무 힘들어 집에서 잠만 잤습니다.

 

그러다 한 달 뒤 시동생과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와서 3시간을 남편에게 소리치십니다.

처가근처에 집을 구했다며 난리치십니다.

또 이사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사할 돈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안 친정어머니가 대신 이사를 해주겠다고 하십니다.

이삿짐 차를 불러주시며 이사비용 40만원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사하던 날 오피스텔을 정리하며 보증금 500만원을 받았습니다.

남편이 너스레를 떨며 그 돈 우리가 가지면 안 되냐고 합니다. 결국 친정아버지께서

200만원을 주십니다. 남편은 참 양심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 돈으로 이사를 하고 커튼도 달고 현관 도어 키도 샀습니다.

전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기를 업고 이사를 하느라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날 저녁 시어머니께서 구경 오시겠다고 합니다. 남편이 피곤하다며 말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참지 못하고 그 다음날 오셨습니다. 휴지와 기저귀 하나 들고...

 

그리고 며칠 뒤 친정 부모님과 여동생들이 왔습니다. 곧 100일이니 유모차를 한 대

사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곧바로 대형마트에 가서 60만 원 짜리 유모차를 사주셨습니다.

얼마 뒤 시댁에 갔을 때 시어머니가 누가 줬다며 쓰던 유모차를 주십니다.

이미 친정아버지가 사준 유모차가 있다고 했으나 막무가내로 가져가랍니다.

 

시동생의 결혼식이었습니다.

먼저 결혼한 동생보고 섭섭하단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 전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머리를 말립니다. 일어서서 물을 마시러 나가는 남편이 저에게 소리칩니다.

"그게 뭐야!"

전 웃으면서 뭐냐고 묻습니다. 남편은 제 머리를 보며 손거울을 갖다 줍니다.

제 정수리에 손바닥만 한 구멍이 생겼습니다.

꽤 오래전에 생겼나 봅니다. 그렇게 큰 걸보니...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고 길을 돌아다닌 제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긴 머리를 풀고 가려고 했는데 계획이 바뀌었습니다. 머리를 묶고 갑니다.

그러나 구멍이 너무 커 쉽게 가려지지 않습니다.

시부모님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물어보십니다.

 

머리가 왜 그러냐고? 아시면서 왜 물으셨을까요?

그리곤 혼자 대답하십니다. 머리가 너무 길어서 빠진 거라고...

남편의 머리가 그렇게 빠져도 저에게 했던 말씀을 하셨을 까요?

역시 며느리는 남인가봅니다.

제 친정어머니는 제 모습을 보고 한참을 우셨습니다.

 

딸 돌이 되었습니다.

돌잔치를 열고 싶었으나, 부모님께서 아직 제 결혼소식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아.

결국 가족들끼리만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딸아이가 식당에서 너무 보챕니다.

몇 입 먹지도 못하고 시댁으로 옵니다.

그때 동서가 말합니다.

"애기 우는 거 너무 듣기 싫어요.."

그러자 시어머니가 묻습니다.

"너넨 애기 안 갖니?"

동서가 제 딸을 보며 대답합니다.

"싫어요.. 애기 우는 거 너무 시끄럽고 듣기 싫어요. 애기 안 낳을 거예요"

 

나는 동서의 말에 순간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나이어린 형님이 소리치면 자존심 상할까봐 가만히 있었습니다.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대신 말해줄 줄 알았습니다.

남편은 땅바닥만 보고 있습니다. 시어머니는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결국 제 딸만 나쁜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시동생에게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동서가 임신을 했답니다. 낳을 거랍니다.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애기 우는 것 듣기 싫어서 낳기 싫다고 제 딸을 보며 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자기 자식은 보석이고 남의 자식은 똥인가 봅니다. 정말 질릴 대로 질렸습니다.

 

주말에 몸이 안 좋아 하루 종일 집안일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일하나 거두지 않고 딸아이 밥도 안 챙겨줍니다.

결국 잠들 때까지 집은 엉망이고 그릇들은 쌓여있고 갖다버려야 할 음식쓰레기는

현관에 있습니다. 내일 하려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초인종 소리가 들렸는데 시댁식구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집안으로 들어 오시자마자 시어머니는 말하십니다. 집에서 쉰내가 난다고...

 

항상 저만 나쁜 사람이 됩니다. 남편에게조차 결혼을 했으면 와이프와 자식 편 좀

들어달라고 애걸했습니다. 그러나 소용없었습니다.

결혼 생활 3년이 넘도록 매일 울며 생각했습니다.

이해해 보려고 애썼습니다. 남편의 우울했던 어린 시절과 고생했던 어머니 때문에

가족을 소중히 생각한 건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남편은 새로운 가정이 생겼고

나 몰라라 하려고 가정을 만든 게 아닙니다. 자신한테는 자신의 울타리로 지켜줘야 할

예쁜 딸과 와이프가 있습니다. 저는 세상이 다 손가락질 하고 친정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아가면서 남편과 딸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되돌아오는 건 결국상처뿐입니다.

 

시동생이 아기를 낳았습니다.

내복 몇 벌을 사갑니다. 부모는 미워하되 자식은 미워하지 말라고 남편이 말합니다.

미워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뒤 마트에서 쇼핑을 하다 조카가 생각 나 겨울에

입는 아기 우주복 한 벌을 샀습니다. 생활비가 쪼들리지만 샀습니다.

 

            

 

20살에 남편을 만났고, 그리고 몹쓸 경험을 했고, 21살에 딸을 지켰습니다.

22살에 삶이 너무 고달 퍼 손바닥만 한 원형탈모가 머리에 생겼습니다.

22살에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24살이 된 지금, 제 기억 속엔 이제 악뿐이 남지 않았습니다.

 

자살시도를 했을 때 남편은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차라리 죽었으면 남편의 무관심을 보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땅을 칩니다.

꽃 같아야 했던 제 20대는 이렇게 저 멀리 날아가나 봅니다.

 

속은 어느새 시커멓게 타 재가 되어 남아있습니다. 하루하루 딸을 보며 삽니다.

딸의 웃음으로 하루를 살고 딸의 내일을 위해 하루 더 버팁니다.

친정 부모님께 너무 죄송해 이 모든 악몽들을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결혼 생활 3년 내내 지옥에 있었습니다.

나만 바라보단 남편은 이제 효자가 되어 자신의 가족만 생각합니다. 나와 딸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처음 연애할 때 시아버지가 말하셨답니다.

"아무나 집에 데려 오지마라."

그래서 아들이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난 시아버지 대접 받아야겠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새아버지라 자격지심에 그러시는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전 시부모님께 안 좋은 말 한 적

없고 무조건 "네, 네,"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동서를 보기 싫어도 시댁에 갔습니다.

수술하신 시아버지께 안부 전화 드렸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친정엄마 쓰러지셨을 때 전화 한 통 안합니다.

물론 처가에도 가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최근에 또 쓰러지셨을 때도 전화 한 통 안합니다.

전화하라고 울어도 보고 화도 내보지만 절대 전화 한 통 안합니다.

지금까지 남편이 친정아버지께 금전적 도움을 구하였을 때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3년 동안 2천이나 되는 큰돈을 가져오면서 단 한 번도 안부 전화 안합니다.

돈이 필요할 때만 전화합니다. 그 걸 알면서도 아버진 딸을 위해 내색하지 않으셨습니다.

 

남편은 3년 동안 1800만원을 벌어다 줬습니다.

남편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친정에 말하지도 못합니다.

남편의 무책임한 행동을 모두 아시는 시어머니께서 말씀 하십니다.

저보고 나가서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전 딸을 위해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습니다.

해준 것 이라고는 모유와 천기저귀밖에 없습니다.

 

아이를 낳으면서 시어머니께서 그러셨습니다.

돈 없으니까 모유 먹여라, 돈 없으니까 천기저귀 써라. 1년 넘게 모유 먹이고

천기저귀 썼습니다. 딸과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제 딸은 쫓아갑니다. 자기도 갖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사주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저번 겨울에도 옷 2벌로 버텼습니다.

책도 친정에서 몇 권 가져와 읽어줍니다.

 

아이를 낳고 2년 동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은 대학교 중퇴인데 나가서 어떤 일을 구할 수 있을까? 내 주위에 대학 나온

친구들도 한 달에 백만 원도되지 않는 돈을 버는데 더군다나 중퇴인 나는

어떤 일을 구할 수 있을까.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나가서 돈을 번다면 벌수 있겠지만 그 돈과 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안정감을 바꿔야 할 만큼 그렇게 큰돈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친정어머니는 고혈압 때문에 쓰러지시고 수술도 하셔서 제 딸을 맡기지 못합니다.

시어머니는 동생 사무실에 나가시고 절대 아이 봐 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결국에 한 달에 100만원 벌며 아이 어린이집에 종일 맡기는 돈 빼면 남는 건

몇 십 만원뿐입니다. 몇 십만 원이 적은돈은 아니나, 내 아이와 떨어지면서까지

얻기엔 너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 딸을 위해 내린 결정인데 시어머니께 강요를 당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딸만 아니면 이혼하고 싶다고 하루에도 몇 십번을 말합니다.

딸 얼굴만 보면 미안해서 눈물이 납니다. 언제까지 저 혼자 이렇게 가슴앓이를 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총각 때부터 직장을 계속 옮겨 다니고 모아둔 돈도 없었지만

잘 할 거라고 믿고 결혼을 한 건데 너무 힘이 듭니다.

처자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이 사람과 계속 살아야할지 막막합니다.

 

친구 한 명이 저에게 그럽니다.

네가 말하지 못하겠다면 자신이라도 친정식구에게 말하겠다고 합니다..

속으로 차라리 그래줬으면 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속 미련하게 남편을 믿고 기다려야 할까요?

제 꽃 같은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이렇게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할 줄 몰랐습니다.

아무 걱정 없이 부모님 울타리에 살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어린나이에 딸을 낳아 키우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딸을 위해

포기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견딥니다.

 

하지만 이런 남편이 딸에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요? 두렵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아이 앞에서 막말과 욕하시는

시어머니와 남편 모습을 보면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혹시나 내 아이가 배우진 않을까하고 두렵습니다.

아이를 위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요?

 

 

<덧글>

여러분, 단편소설 한권 읽으셨지요?

고생하셨습니다.

위의 글은 어느 독자가 제 메일로 보내온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저의 블로그 팬인것 같습니다. 저의 챆까지 사신 걸 보면....

저는 메일의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마치 가수 이미자씨의 노래 ‘여자의 일생’이란 가사가

자꾸 마음속으로 맴돌았습니다.

행복한 여자들은 이해를 하지 못하겠지만 실제로 현실에서는 이런 불행한 여인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나이 어려서 저지른 사랑의 씨앗 때문에 어쩌지도 못하는 여인의 앞날이 가련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4살, 이 여인은 여러분의 답을 듣고 싶어합니다. 

                                                                * 이 사연은 본인의 양해를 얻어 이곳에 올립니다.

 

추천합니다

 

 

               

                                            비바리님의 책 이미지 클릭하면 인터파크 구매 페이지로 갑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