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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아파트 계단 오르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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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이 내렸다.

바깥 걷기 운동을 못하는 대신 아파트 1층에서 15층까지 오르기로 했다.

마누라가 먼저 그렇게 하자고 제의를 했다.

 

꼼지락 거리기 싫은 나는 얼떨결에 'NO'라고 말했다가 금방 취소를 했다.

보나 마나 마누라 입이 대여섯 자는 튀어나올 것 같아서다.

 

"어휴~ 15층까지 몇번이나 오르 내리락할 건데?"

내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세번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세 번씩이나?"

 

마누라는 현관문을 열고 앞장을 섰다.

나는 줄래 줄래 뒤를 쫓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세 번 정도야 그냥 할 수 있지 않을까?

80이 넘은 나는 그렇게 철없이 쉽게 생각했다.

 

1층에서부터 계단을 밟아 오르기 시작해서 3층까지는 아주 거뜬(?)하게 올랐다.

어느새 젊은(?) 마누라는 나를 제치고 앞장을 섰다.

 

나는 계단에 5층 표시가 나오면서부터

이상스럽게도 다리가 무겁더니 숨을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언젠가 한 번은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11층 내 집까지 초죽음처럼 헐떡이면서 계단을 밟아 오른 기억이 생각났다.

오늘, 15층까지 걸어 올라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미리 생각은 했었지만

5층부터 징조가 이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6층, 8층, 10층까지 겨우, 겨우 올랐다.

점점 더 숨이 차오른다.

 

앞서가는 마누라는 이미 숨소리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역시 나이와 체력은 비례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어휴~ 써글넘의 마누라! 같이 올라갈 것이지 저 혼자서만 @#$%!"

 

나는 한 계단 한 계단 헐떡이면서 기어이 목표층까지 도착했다.

정말 숨이 턱까지 올라붙었다.

내려가는 것은 엘리베이터를 타기로 했다.

 

이제 두번째 도전이다.

1층에서 다시 첫 계단을 밟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르는 발걸음이 드디어 후들, 후들 떨리기 시작한다.

평지를 걸을 때는 제법 유연한 발걸음이었는데  위로 오르는 발걸음은  유난히 힘이 든다.

몇년 전 중국 '구체구'관광길의 까마득한 계단길이 생각났다.

그 때도 헐떡거렸었는데 오늘은 초장부터 숨이 탁탁 막힌다.

역시 흐르는 나이는 속일 수 없는가 보다.

 

겨우겨우 11층까지 올라왔다. 내집 현관문이 보인다.

그만 포기할까?. 15층까진 무리다.

무리하다 일 난다는데... 어쩌지?

앞서 오르는 젊은 마누라는 기척도 없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그토록 강한 의지(?)를 무참히 꺽었다.

11층 내 집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거실에 들어가자마자 소파에 긴 숨을 뿜어대면서 축 늘어졌다.

 

"봐주라! 나도 살고 봐야 할 거 아니야!"

다 죽어가는 개미 소리로 나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한참 후에 마누라가 들어왔다.

15층을 세 번 오르락, 내리락 했단다.

대단한 마누라다.

내가 이 여자를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이유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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