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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불명열 체험수기] 처음 들어본 병이름 '불명열', 내가 그 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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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처음 들어본 병이름 '불명열', 내가 그 환자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본 병명이 있다.
이름 하여 '불명열'.
분명히 몸에선 열이 오르는데 그 열을 찾지 못해서 지어진 이름이란다.
이 병의 낚시 바늘에 내가 제대로 걸린 거다.
.
*증상
나는 소위 말하는 새벽 형 인간이었다.
밀린 그림원고나 해오던 그림에세이는 거의 아침 일찍 맑은 정신으로 마무리 한다.
그리고 아침을 먹고 나서 한 시간쯤 후에 헬스클럽에 다닐 정도로 건강했었다.
그런 어느 날(약 두 달 전)부터 마치 갑자기 몸살같이 오한이 들면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하루 중 최고로 오를 때는 39도 5부까지 갔다.
시중 약국에 판매하는 'XXXX'을 두 알씩 먹으면 정상체온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열은 올라갔다.
별일 아니겠지 하면서도 아내의 성화 때문에 동내에 있는 모내과에 며칠 다녔다.
그곳에선 혈액을 채취하여 검사하고 간초음파까지 했지만
아무런 이상증세가 없다고 하며 해열제 주사약을 놓아주었다.
그러나 그 역시 약효가 떨어지면 이상스럽게도 또 오한이 나면서 열은 오르기 시작했다.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큰 병원으로 가볼 것을 권유했다.
나는 그날로 바로 일산의 'I'병원 를 찾아 가정의학과의 주치의 명에 따라 즉시 입원했다.
 
*고열(高熱)이란?
우리의 몸 안에는 수많은 장기가 있다.
체온이 올라간다는 증거는 이 많은 장기 중에서 어느 한 장기에 심한 염증이 있거나
그곳이 심히 곪거나 하면 열은 자동으로 발산하게 되기 때문이다.
고열을 멈추려면 이 녀석을 찾아내 항생제를 집중 투여해 치료를 하면 된다.
나는 거의 한 달을 입원하면서 내 몸속의 장기 하나씩을 세밀히 검증 했다.
심장초음파, 심장단층촬영, 심전도검사, 간 검사, 콩팥심층촬영, 전신골(뼈) 스캔,
구강 부분 단층 촬영,
그리고 고무줄을 코에서부터 위까지 집어넣는 완전 고문(?) 상태에서 혈액이 새는지도 직접 알아보았다.
가슴의 엑스레이 사진은 수 없이도 많이 찍었다.
그러나 단 한군데도 이상이 없었다.
 
*세부적인 장기검사
이제 내 몸은 가정의학과에서 감염내과 발열질환전문의한테로 넘겨졌다.
전문의는 검증하지 않은 나머지 장기를 하나씩 검사해야한다고 했다.
내가 제일로 고통스러워하는 위내시경부터다.
한 30여 년 전에 한 번 해본 경험이 있다.
고무줄이 위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울컥울컥 토하는 고통스러움이 새삼 떠  올라
무서웠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그 다음 공포가 대장내시경이다.
주위에서 얻어듣는 그 고통스러운 경험담에 이미 난 기가 질려 있었다.
평소에 변색깔이 좋아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의사에겐 통하지 않았다.
콜라이드란 하얀 액체가 4리터나 들어있는 플라스틱 통이 나에게 넘겨졌다.
평소에도 물을 잘 먹지 않는 내 성격에 그 많은 분량의 액체를
3시간 이내에 마셔야한다는 것은 거의 죽음이다.
 (Tip! 마시는 방법을 나중에 터득했다.
처음 마실 때 단단히 마음먹고 절반을 단숨에 마셔버리면 편하다. 
그리고는 나머지는 삼분의 일씩 나눠서 먹으면 좀 쉽다.
그리고 나머지 한 컵 정도는 슬쩍 버려도 괜찮다)
대장 내시경은 내 생전에 처음해본 검사였다.
대장 중간에 물혹 같은 용정 5개가 발견되어 즉시 제거했다.
그러나 이 용정은 열과는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다음에는 척수검사였다.
등뼈하단의 요추에서 뇌척수 액을 주사바늘로 채취하는 것이다.
혈액채취는 별로 아프지 않았지만 혈액을 뽑은 후, 4시간을 똑바로 들어 누워 있어야하는 고통이 따른다.
 
이번 검사의 마지막 공포인 골수검사를 했다.
엉덩이 부분 뼈에 주사바늘을 강제로 밀어 넣고 골수를 채취했다.
약간의 마취로 별로 아프지는 않았지만 골수채취 후에 모래주머니를 엉덩이에 받치고
똑바로 누운 채 6시간을 움직이지 못하는 살인 고문(?)이 문제였다.
이렇게 해서 거의 한 달 동안을 몸 구석구석까지 이 잡듯 세부 검사를 다 마쳤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내 몸의 장기는 신통하게도 모두 다 정상들뿐이었다.
이 정도면 60중반의 나이로 건강 체질 아닌가?
 
*각종검사가 몸을 쇠약하게 만들어
나는 결과적으로 병원의 온갖 검사로 해서 체중이 10kg이나 빠졌다.
잘 걷지도 못해 휠체어 신세를 져야만 했다.
각종링거, 해열제, 항생제를 끊이지 않고 맞았으니 밥맛이 있을 턱이 없다.
음식을 먹지 못하니까 몰골은 인간의 모습이 아닌 외계인이나 다름없이 변해갔다.
끼니때만 정확히 오르는 밥상만 보면 가슴이 울렁거려 토할 것만 같았다.
또 있다.
매일 새벽 4시면 흡혈귀(?)같은 간호원이 내 팔에 고무줄을 동여매고
적게는 3개, 많으면 10개의 튜브에 혈액을 뽑아갔다.
먹는 것도 없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많은 피를 뽑아 엄청난 검사를 했으니
아무리 건강 체질이라도 견디지 못할 것 같다.
더구나 두시간마다 귀에다 체온계를 집어넣고 체크하는 바람에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병원으로써는 당연한 절차였다. 열이 오를 때에 맞춰 혈액을 채취하여
그에 알맞은 항생제를 투여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검사한 장기마다 항생제는 달라질 수 있어 쉬지 않고 맞게 되는 것이다>
 
*'불명열' 
이렇게 많은 검사를 했지만 결국엔 고열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결과는 '불명열'이란 환자로 분류되었다.
감염내과 주치의도 바싹 마른 내 몰골을 보고는 안타가워 했는지 퇴원을 명했다.
- 어르신, 그동안 각종 검사를 용케 참고 무사히 마치셨네요. 고생 많이 하셨어요.
 
그리고는 원외처방약을 먹도록 권했다.
흐트러진 몸을 간신히 추려 집으로 와 점심때부터 먹었다.
두어시간이 흐르자 신통하게도 내몸은 일상의 체온 36도 5부로 내려갔다.
알고 보니 그 약들은 오르는 고열을 강제로 끌어내리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정상체온으로 내려간 것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정상체온이 이렇게 날아갈 것 같다는 것에 대해서 왜 이제야 그 고마움을 깨달았을까?
인간의 무지가 새삼 원망되었다.
주치의의 말은 처방약은 일주일 먹고 혈액검사를 병행하면서 한 달간을 지켜본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대개의 환자들은 정상체온으로 돌아가는 예가 많다고 했다.
현대의술은 많이 발달된 것 같은데도 이 '불명열'은 쉽게 잡지 못하는 것 같다.
 
이제 모든 것은 내 운명에 맡겨야 할 것 같다.
- 너는 여기까지야! 하면
- 그동안 잘 놀았습니다. 라고 수긍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운명의 신이
- 다시 일어나라. 하면 또 멋쩍게 웃으면서 일어날 것이다.
 
이제 '불명열'이란 병에 대해서 조금 이해했으리라 생각한다.
모두들 건강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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