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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덤으로 사는 세상, 내 블로그에 건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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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사는 세상, 내 블로그에 건배를 한다





블로그를 시작한지 오늘로 만 5년 5개월이 넘었다.
2005년 5월 초,
오마이뉴스 블로그 2년여, 그리고 이사를 온 조인스 블로그 3년여의 세월.
내 생전에 그래도 좋은 세상 만나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인터넷의 온라인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어
이렇게 왕성(?)히 활동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내 스스로도 놀랄만한 일이다. 





5년이란 세월은 참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그동안 내 블로그에 올린 포스트 건수도 무려 2,300여건이나 되었다.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성격이라
속된 말로 '죽어라고' 블로그와 씨름했던 것 같다.
되지도 않는 그림과 글, 두서없이 마구 올렸다.
계산해 보면 거의 하루에 한건 이상의 창작그림을 그려 올린 셈이다.
내가 생각해 봐도 지독한 성깔이다.
하긴 그 덕분에 운이 좋게도 책도 서너 권씩이나 묶어져 출판되었으니
나름대로의 보람은 있었다.





이 모두가 암 수술을 받고 덤으로 사는 내 인생의 시간에서 나온 결과물들이라
더없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내일 11월 1일. 꼭 6년 전 오늘이었다.
병원 닥터는 나를 앞에 불러놓고 잔인하게도 암이라는 사형선고를 내렸다.
당장 수술을 해야한단다.
석달 후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 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이렇게 오는 것인가 보다>탄식하면서 세상에 대고 절규했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참으로 가련한 나 자신을 돌아다 보았다.
절규는 과욕이었다.
 
어쩌다 보는 남들의 짧은 생에 비하면 이 만큼까지 살아온 것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
후회와 부끄러움에 한동안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들, 딸 남부럽지 않게 교육시켜 모두 출가 시켰고.
아내에겐 조그마한 집이라도 한 칸 남겼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것을
더 살겠다고 추한 절규를 하다니...
 
수술을 마치고 병원에서 퇴원한 나는
신문사 은퇴후 바로 오픈한 디자인작업실을 과감히 접어야했다.
한참 잘나가던 사무실이었지만 출퇴근을 하면서하는 작업은 나에게는 무리였다.
대신 몇가지 간단한 컴퓨터 작업만 집에서 하기로 했다.




"암 수술한지 이제 6년째로 접어들었네요.
현재까진 MRI상으로 전이(傳移)되는 증상이 없으니 90%는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암이란 놈은 언제 어디서 불쑥 나타날지 모르니 매년 체크해야 합니다"
담당 주치의의 말은 수술에 성공했어도 암의 관찰은 계속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 앞으로 얼마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지금은 덤으로 사는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더욱 내 창작(그림)에 채찍질을 하고 있다.
 
블로그를 열었다.
갑자기 하고 싶은 작업이 너무 많았다. 
병원 입원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 동화(童畵)에 전념했었지만 
지금은 본격적인 성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사랑하면 그리는 거야> < 여보야!> < 우리 부부야, 웬수야?> < 프러포즈 메모리>
불과 5, 6년 사이에 네 권이라는 책이 묶어져 나왔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내고 싶진 않다.
<시어머니, 시어머니> <당신을 생각합니다> <당신의 부부를 훔쳐본다>
<남자, 그대 바본가?> 블로그의 많은 아이템들이
서로가 먼저 오프라인 세상에 나오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내 가슴도 덩달아 뛰고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그런다.
너무 무리하다간 또 건강 해친다는 염려다.
고맙긴 하지만 내 건강 유지법은 내가 정신없이 일속에 빠지는 것이다. 
요즘 내 삶의 활력소는 참신한 블로그 운영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내 방을 찾는 독자들의 무언의 성원이다.
좋은 이웃지기들도 많이 만났다. 
그들이 나를 춤추게 한다.
 
나는 새벽마다 새로운 창작의 진통을 겪는다.
그것은 아픔이라기보다는 기쁨이다.
인터넷이란 문명의 이기는 내 인생의 마지막 활로를 열어준 고마운 미디어다.
그 미디어인 블로그와 더불어 오늘 만 6년이란 덤의 삶에 고마워하면서
소주잔으로라도 자축의 건배를 해야겠다.
"강춘의 남과 여, 거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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