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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그림 그리는 일을 타고난 사람 그림작가 강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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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규가 만난 우리시대 그림책 작가

 

그림 그리는 일을 타고난 사람

그림 작가 강인춘

 

 

 

 

 

*

세상에 직업은 천태만상이다.

  어쩌다 나는 일러스트를 그려서 밥을 먹는 직업을 택했을까?

  가끔 생각해 보지만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은 없었다.

  그만큼 나는 일러스트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다.

  더구나 내가 좋아서 즐겁게 그림 그리고, 또한 이토록 나이 먹었어도

  손이 떨리지 않는 한 얼마든지 그릴 수 있는 일이니 천만다행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천직을 사랑한다.

  일상에서 자신이 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더 없는 행복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순간도 나는 행복에 젖어 있다.

  신에게 감사해야 한다.

- 강인춘 -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하여 이처럼 자부심과 고마움을 갖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일러스트 1세대 작가들은 어쩌다 보니 우연하게 출판미술에 접어든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아예 처음부터 일러스트레이터라는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은

스무 살 안팎의 청년 강인춘은, 그 포부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화우 윤문영이 그려준 강인춘 캐리커쳐

 

 

 

194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강인춘은

해방된 이듬해인 1946년 6월 어느 비오는 날 밤

어른 키 가슴까지 차오르는 한탄강(현재 임진강)을 도하 인천으로 월남했다.

인천 신흥국민학교에 입학해서 3학년 때 6·25사변으로

남쪽 항구도시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소년 시절을 보냈고,

다시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전주로 옮겨 청소년 시절을 지냈다.

 

강인춘은 고등학교 2학년 때 3남지방 고교백일장대회에서.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신 고 신석상선생이 심사를 해서 수여하는 장원의 영예를 안았다.  

뿐만 아니라 그해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투고한 것이었다.

강인춘이 다니던 고등학교 교지에 실었던 글을

누군가가 그대로 신문사에 보냈던 것이다.

뒤늦게 이를 알고 신문사에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바로잡았다.

이미 문예반에서 활발하게 습작을 하고 있었기에 문학도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전북일보사에서

역사 연재소설 삽화를 그리고 있었다는 점을 보면

강인춘의 예술 영역은 문학과 미술을 아우르고 있었던 것이다.

 

문학에 재능을 인정받고 있던 강인춘은 뜻밖에도 미술대학을 진로로 선택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은 그에게 있어 새로운 세계이자,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발판이었다.

강인춘은 자기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순수 회화에서

피카소보다 더 잘 그리고 더 유명해질 수 없다는 걸 일찌감치 알아챘다.

그래서 자기만의 전문 분야를 발굴해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강인춘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선택했다.

이것이 얼마나 잘한 선택이었는지는 강인춘이 살아온 삶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사회에 발을 내딛고 처음 일을 하게 된 곳이 어린이 잡지〈새벗〉이었다.

편집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는

이미 김광배, 송영방 같은 선배 화가들이 이 잡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이제 강인춘도 냉엄한 사회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독자들과 맞닥뜨려야 했다.

바로 그 현장에서 발탁된 것이다.

고교 시절 동화로 신춘문예에 당선돼 글재주를 인정받은 강인춘은

이제 어린이 잡지와 인연을 맺고 평생 함께할 최고의 동반자가 되었다.

 

 

 

1972년 kbs-tv 인기드라마 '여로' 타이틀 원본이다. 태현실 캐리커쳐.

 

 

 

1972년 한때 강인춘은 케이비에스(KBS) 방송국에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타이틀을 디자인(캘리그라피)하는 일을 했다.

이때 작업한 타이틀 글씨는 당대 최고의 인기 드라마였던 ‘여로’를 비롯해 수없이 많았다.

특히 드라마 ‘여로’가 방영되던 시간대에는 텔레비전이 있는 집으로 사람들이 다 몰려가 버려

도시길거리가 텅 빌 정도였으니, 그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비록 돈벌이는 크게 되지 않았지만,

그때 그 시절 ‘여로’로 인기몰이를 했던 장본인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기분 좋은 추억이 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생활이 어려웠던 때라 정식으로 월급 받는 일을 찾았다.

 

1974년에 동아일보사와 엠비씨(MBC)에 입사지원서를 냈는데

먼저 합격 통보를 받은 동아일보사에 마음이 기울었다.

엠비씨에서 할 일은 무대미술 일이었고, 동아일보사는 일러스트 일이었는데,

이번에도 여러 출판 매체를 만날 수 있는 신문사를 택한 것이다.

결국 동아일보사가 강인춘이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낸 일터이자,

일러스트를 꽃피운 요람이기도 했다.

 

1974년부터 1998년 미술부장을 거쳐 편집위원으로 퇴임하기까지

23년 동안, 월간지 마감 때만 빼고 강인춘 자리에는 늘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사외 원고를 주고받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면서 항상 들썩들썩했다.

강인춘의 집무실은 자기 작업실이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잡지 그림을 청탁 받은 작가가 와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공간이었다.

한번은 이우경 화백을 불러들여 〈여성동아〉에 급한 삽화 몇 장면을 부탁한 적이 있다.

강인춘은 이우경이 주로 선을 많이 사용하는데다 그림도 그리 복잡하지 않아

금방 그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어린이가 그린 것처럼 반듯한 선 하나 없는 그 그림을,

작가 이우경은 다섯 시간이나 공들여 그리는 것이었다.

 

강인춘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듬성듬성 그리는 것처럼 보이는 강인춘의 그림을 쉽게 나오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고를 몇 번씩 훑어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밑그림 그리고 완성하기까지

온 방 안이 쓰레기장이 되도록 집중하고 긴장한다.

그렇게 나온 그림은 쉽게 그려진 것처럼 간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작가마다 고유한 표현 기법이 있기 마련인데,

강인춘의 매력은 단순한 것처럼 보이는 선 묘사이다.

어떤 그림은 외곽선이 반듯하고 직각으로 그려지는가 하면,

어느 시기부터는 부드럽게 굽은 선들로 대조를 이룬다.

두 방식 모두 한 작가가 그려 낸 것이지만,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만들어 낸다.

 

 

 

펜으로 그린 전래동화

 

 

1996년 한국안데르센에서 나온 《거짓말로 고친 버릇》에서,

부자 영감 그림은 강인춘의 회화세계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켄트지를 놓고 채색할 부분에다 평붓으로 물을 먼저 묻힌다.

그런 다음 유성 펜으로 먹선을 그린 뒤 수채화로 채색을 하면,

마치 한지에 색을 칠한 것처럼 아주 부드럽게 표현된다.

한지를 찢어 붙여 콜라주 기법과 전혀 다른 질감이 나오는 이 독창적인 표현은

단지 재료를 쓰는 방식에서만 눈에 띄는 것이 아니다.

구도를 아주 중시하는 작가의 공간 장악력은 그림책에서 더 잘 드러난다.

인물과 배경이 앞, 옆, 뒤쪽에 가려지는 데가 없어 마치 영화 화면 같다.

뿐만 아니라 손으로 그려 가는 인물들 바깥 선이

은은한 채색과 어우러져 이야기 속 인물들이 살아 나온다.

여기서 그림 작가 강인춘의 ‘간명함의 미학’이 완성된다.

 군더더기 없는 강인춘만의 표현 세계이다.

 

이 책 8쪽과 9쪽에 부자 영감과 큰딸이 놓인 구도는 크고 작은 대비와 표정 대비가 돋보인다.

이런 구도는 이야기를 극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장면 연출로,

욕심 많은 큰딸과 딸을 만나러 간 부자 영감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림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지로 감정을 표현하고, 배경을 잘 묘사하는 것인데,

강인춘이 그린 이 작품은 옛이야기 그램책 가운데서도 으뜸이 된다.

 

 

 

그림의 선들이 직각으로 그려졌다.

 

 

2000년에 눈열린교육에서 나온 《내 동생 철이 때문에 속상해요》는 앞선 작품과 전혀 다르게 표현했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은 거의 모든 부분이 각지게 그려져 있다. 머리, 손, 발, 심지어 눈동자까지 각이 져 있다.

이런 그림에 대해 작가는 스스로 ‘직선은 단조로움의 매력과 경쾌함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굳이 말하자면 다른 작가들과 차별되어 더 매혹적’이라고 표현했다.

확실히 강인춘이 그린 각진 그림은 남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켄트지에 먹선으로 각을 그리고

파스텔로 채색한 그림을 보면, 직각의 날카로움과 파스텔의 부드러움이 한데 어우러진다.

 

 

 

파스텔로만 그렸다.

 

 

1993년 대연출판사에서 나온 《생명을 찾은 섬》은 두 작품의 중간 단계에 놓일 수 있는 표현이다.

먹선에 파스텔로 칠한 그림인데, 곡선과 직선이 혼합되어 표현 방식이 바뀌어 가는 과도기처럼 보인다.

채색 재료가 파스텔이다 보니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표현 기법이나 작업 방식이 바뀌곤 한다.

 

 

 

1994년 문체부장관이 수여한 일러스트레이션 상 작품이다.

 

 

1994년에 보림출판시에서 나온 《하늘에 그린 그림들》은

제목처럼 작가가 정말 꿈꾸는 모든 것이 하늘에 담겨 있다.

강인춘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이 작품에서는 그 내면세계를 잘 엿볼 수 있다.

 

강인춘은 한국 일러스트의 역사를 함께한 ‘한국무지개일러스트’를 만든 주역이면서,

나이와 계층 경계 없이 온라인 블로그를 통해 천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만나고 있는

백발의 일러스트레이터이다.

하지만 강인춘은 전혀 늙지 않았다.

암이라는 불청객이 잠시 찾아왔지만,

잘 이겨 내며 우리들에게 강인한 생명력만을 보여 줄 뿐이다.

강인춘이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천직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다면,

우리는 강인춘을 만난 것에 자부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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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작가 강인춘이 낸 책들

<어린이 정서교육>, 국민서관, 1982 / <초립동이>, 아이템풀, 1990 / <생명을 찾은 섬>, 대연, 1993 / <하늘공주>, 대연, 1993 /

<하늘에 그린 그림들>, 보림, 1994 / <항아리의 비밀>, 한국프뢰벨, 1995 / <거짓말로 고친 버릇>, 한국안데르센, 1996 /

<세이의 크레파스>, 삼성출판사, 1996 / <내 동생 철이 때문에 속상해요>,눈열린교육, 2000 /

<사랑하면 그리는 거야>,인터미디어,1977 /<여보야>, 해누리, 2003 /

<프러포즈메모리>, 1000k, 2007 / <우리 부부야 웬수야?>, 추수밭, 2006 /

<자기는 엄마 편이야? 내 편이야?>, 학마을B&M, 2011 외 다수

 

*<개똥이네 집>2013년 12월 호에서 발췌한 글.

 

<덧글>

위의 인터뷰글은 제 개인적인 글입니다.

블로그에 삶의 기록을 위해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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