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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백수 남편이 가끔 아내를 위해 쳐주는 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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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이 시간 때쯤이면 아내는 평상시에 하던 그대로

수영복을 챙겨들고 수영장을 향해 집을 나설 시간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다르다.

식탁에서 보던 신문을 계속해서 보고 있다.

“왜? 오늘은 수영장이 쉬는 날인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거의 40년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끈질기게 수영장을 다니던 아내도

이젠 나이가 말해주는 가보다.

감기 기운으로 그 좋아하는 수영을 쉬는 걸보니.

 

 

 

식탁 위에 펼쳐진 멸치족들이다.

사진위는 아내가 깐 멸치.

사진 아래는 내가 깐 멸치 똥, 그리고 그 잔해들이다. ㅋ

 

 

 

“멸치 똥이나 깔까?”

아내는 식탁에 보던 신문을 펼쳐 깔더니

며칠 전 농협 마트에서 산 멸치박스를 쏟아 놓는다.

이른 아침부터 멸치 똥을 까다니?

아침밥을 먹고 작업실 내 방에 들어가려는 나는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직접 나를 보고 같이 까자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혼잣말은 나를 보고 하는 일종의 압력이었다.

 

 

나는 별수 없이 주저앉았다.

여기서 모른 체하며 내방으로 곧장 직행할 수 있는 그런 용기는 없었다.

그래, 식탁에 아내와 마주 앉자.

그래서 아내의 고주알미주알 풀어놓는 푸념의 얘기에 맞장구를 쳐주자.

오늘 하루 내가 편히 지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말이다.

 

 

아내는 빠른 손놀림으로 멸치 똥을 발라내면서

내 짐작대로 고주알미주알 지나온 과거사, 현재사, 미래사를 펼치기 시작했다.

나도 타이밍 맞춰 장단을 쳐주기 시작했다.

“그래? 그랬구나! 그래서! 저런~!”

 

 

<후기>

싫든 좋든 거의 한 시간가량을 아내와 마주하고 있었다.

참 오랜만에 조우(?)였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가끔은 이런 시간도 부부간에는 필요하다는 것을

왜 늦게서야 실감하는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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