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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지외할미

엄마, 나 이런 남자와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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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아침이다.
늦은 아침밥을 먹고 난 후의 일이다.

남편은 식탁 앞에서 곧바로 앞치마를 두르더니 
빈 밥그릇과 찬 그릇을 모아 
곧바로 싱크대의 개수대에 쏟아놓고 
시키지도 않은 설거지를 손수 하고 있었다.
나는 의외라고 생각해 그런 남편 뒤에 다가가 살짝 물어봤다. 

"오늘 웬일이야? 이렇게 솔선해서 설거지를 하다니"
"............"
"왜 대답 없어? 화가 났어? 아님 뭐가 못마땅해 삐딱선을 탄 거야?"
"............"
재차 물었지만 남편의 입술은 열리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답답했다.

"혹시 말이야. 내가 당신을 손안에 꽉 쥐었다고 생각해?"
"무슨 말씀이셔? 내가 자기 손안에 쥐었다니? 
우리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나 스스로 자기 손안에 쏙 들어간 거지
왜, 뭐가 잘못됐어?"
남편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아주 천연덕(?)스럽게 대답을 하며 설거지에 여념이 없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능청스러워 보이는지...
설마, 저 능청스러움이 정말 남편의 본심일까?
아니면, 능구렁이의 탈을 쓴 가면은 아닐까?

한마디로 남편의 대답은 순간적으로 나를 헷갈리게 했다.
평소에 내가 남편에게 저지른(?) 모난 성깔의 행동들이 
순식간에 영화 필름처럼 빠르게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정말 그랬나? 내가 너무 남편을 쥐고 흔들었었나?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내가 자위적으로 당신 손안에 들어 간 거야!>
남편의 짧은 대답 한마디가 자꾸 내 피부를 아프게 파고 들어온다.

그래, 친정엄마 말대로 나는 여우의 탈을 썼나 보다.
모든 것들이 나보다는 한 수 위인 남자.
그래서 여자를 폭넓게 다룰 줄 아는 남자.
후후... 참 괜찮은 남자.
이 남자가 바로 내 남편인 거야. 

엊저녁, 늦은 밤 자정 가까이 되어서야 
술 냄새 피우며 현관문 소리 없이 살짝 열고 들어오는 내 남자.
그 남자는 오늘 아침 반성의 죗값으로 
스스로 자청해서 지금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엄마! 나, 이런 괜찮은 남자와 살아요. 
당신 딸 걱정 내려 푹 내려놓으셔~ 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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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글년!
그려~ 엔날부터 내리오는 말인디 지 복은 지가 타고 난다고혔어.
이제 봉께 지집아가 냄편 복은 터졌구먼 그려.
근디, 저넘의 지집아 저 변덕은 메칠이나 갈 건가 몰건네. 쯧쯧쯧...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16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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