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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걸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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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짐꾼 아침 햇볕이 눈부시다. 영하 7도의 매서운 추위. 할머니의 손 꼭 잡고 유치원 가는 어린 손녀. "아~! 그런데 손녀의 유치원 가방은 어디 갔을까?" "아~! 할머니가 짐꾼이었네" 손녀의 가방은 할머니 등에 점잖게 앉아 있었네.
인도 소년에게 산 석가모니 불상은 가짜였다 아무리 살펴봐도 정말 잘 만들어진 석가모니 석상이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갈 정도의 작은 돌에다 이렇게 정교하게 불상을 조각칼로 다듬어 부처상을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돌의 재질을 자세히 살펴보면 철분이 많이 섞여있는 것 같다. 돌조각도 인위적으로 자른 것은 아니고 자연적으로 떨어져 나간 돌조각 그대로의 형상에다 부처상을 조각해 놓았다. 특히나 얼굴은 경주 불국사의 석가 상을 그대로 닮은 것 같았다. 법의를 왼쪽에 걸치고 있고 손 모양은 향마촉지인으로 깨달음의 순간을 그대로 표현한 것 역시 똑같았다. 도대체 인도인 그네들의 손재주는 운명적으로 타고난 것일까? 아무리 이미테이션이라 해도 이렇게 섬세하게 조각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이런 불상 하나 만드는데 얼마만 한 시간과 정성이 깃들었을까? 석가모..
설거지 연습 "어머머? 아휴~! 아무리 남자라도 그렇치 이걸 설거지라고 해놓은 거야? 이것 좀 봐. 닦아놓은 그릇에 세제 물이 줄줄 흘러내리잖아. 자긴 설거지 연습도 안 하고 결혼한 거야?" 옴마? 지집아야! 거시기 그게 먼말이여? 시방 니 주둥이로 내뱉은 말이 뭔 말이냐고 어메가 묻잖혀? 참말로 시상이 뒤집어진 거여? 즈그 냄편보고 설거지 연습도 허지 않고 결혼혔다니? 아무리 여자가 뻗대는 시상이라도 글치 시상 천지에다 대고 물어봐라. 냄자가 설거지 연습하고 갤혼한 남자가 어데 있냐고? 지집아가 말 같은 말을 혀야지 주댕이로 막 튕겨나오는 말이라고 혀서 지멋대로 쏟아붓는 거 아니라고 어메가 그토록 일렀구만. 시방 쩌어그 느그 베란다에 나가 자존심 팍팍 죽이고 있능 느그 냄편, 깍지 애비가 니 눈에는 안 보여? 저러..
마누라의 외출 "누구 만나러 나가?" "집엔 언제 들어오는데?" "내 밥은?" 외출하려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마누라에게 절대로 이렇게 꼬치꼬치 캐묻는 남편이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마누라에게 물어봤자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마누라의 매서운 눈초리, 자조의 한숨, 일그러진 분노뿐인데 말이다. "내 걱정일랑은 하지 말고 친구들과 마음 편하게 즐겁게 놀다 와요. 사모님" 이렇게 말하면서 내 안면에 방긋방긋 웃는 얼굴을 덧칠해야 한다. 백수, 삼식이 노릇 수삼년에 얻은 나만의 노하우다. 비쌀 이유도 없다. 노하우 공짜로 줄 테니 원하는 사람들 다들 가져라. -- 몇 년 전에 연재했던 중앙일보의 '나의 일러스트 칼럼'이다. 몇 회분 되지 않지만 블로그에 틈틈이 다시 올린다--
백수와 살림살이 "청소 정도는 나도 할 줄 알아" 백수 주제에 집안일을 온통 마누라가 도맡아 한다는 것이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그래서 솔선해 마누라에게서 청소기를 넘겨받았다. 얼마 안 있어 마누라는 자연스럽게 또 다른 일을 부탁했다. "기왕이면 세탁기 돌리는 것도 도와줘' 그래서 세탁물도 넘겨받았다. 어제는 여고 동창생 모임이 있어서 나가야 한다고 마누라는 나에게 전기밥솥을 안겨주면서 밥 짓는 방법을 알려줬다. 큰일이다. 하나 정도는 괜찮았지만 두세 가지 넘게는 부담된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을 나한테 넘길 것인지 두렵다. 이러다 집안 살림 통째로 넘기려는 것은 아닌지? '백수라는 죄'가 참 무섭다. -- 몇 년 전에 연재했던 중앙일보의 '나의 일러스트 칼럼'이다. 몇 회분 되지 않지만 블로그에 틈틈이 ..
마누라의 웃음 마누라님이 웃었습니다. 마누라가 웃은 게 뭐 그리 신기한 일이냐고 하겠지만 나한테는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웃음이었습니다. 내가 백수 되고도 한참을 그늘진 얼굴만 보았는데 오늘 어쩌다 본 마누라의 저 환한 웃음은 나로 하여금 가슴 설레게 했습니다. 새까맣게만 물 들은 내 마음속에 이리저리 엉켜있었던 그 많은 수심이 신기하게도 한꺼번에 시원하게 풀어졌습니다. "그래그래, 당신은 웃어야 예쁘다니까. 그 예쁜 얼굴을 왜 허구한 날 찡그리고 살아?"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마누라가 귀담아 들었는가 봅니다. 웃던 얼굴을 살짝 돌리더니 입을 삐죽이며 눈을 흘깁니다. 아~! 옛 모습 그대로입니다. 아직도 이놈의 삼식이는 영 밉지 않은가 봅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마누라바보'입니다. -- 몇 년 전에 연재했던 중앙일보..
남자가 결혼하는 이유 남자가 결혼하는 것은 자녀를 얻기 위한 것이지 여자의 충고를 듣기 위한 것은 아니다. (샤롤10세 charles) 1957-1836 프랑스 국왕
할머니 사랑하세요?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누구세요?" "무서운 사람? 너는 누가 무섭니?" "엄마요. 할아버지도 말해봐요" "나? 글쎄다" "아~! 빨리 말해보라니까요" "할~ 할머니란다" "히히히 그럴 줄 알았어요" "얘야! 그런데 넌 그렇게 무서운 엄마를 사랑하니?" "그럼요, 사랑해요. 내 엄마니까요" "............" "할아버진 할머니를 사랑하세요?" "나?" "왜 또 말 못하세요" "할아버지도 할머니를 사... 랑... 한... 단... 다" "그런데 왜 말을 더듬으세요?" "더 더듬기는... 내가 언제?" 어휴~! 오늘도 여우 같은 손녀한테 또 꼼작 없이 당하고 말았다. -- 몇 년 전에 연재했던 중앙일보의 '나의 일러스트 칼럼'이다. 몇 회분 되지 않지만 블로그에 틈틈이 다시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