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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지외할미

아내가 또 냄비를 태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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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주방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는 것이 아니다.
밑바닥이 새카맣게 타버린 냄비를 철 수세미로 힘주어 닦는 중이다.
누가 태워 먹었냐고?
아내가 그랬다.

아내는 고등어조림을 한다고 냄비를 가스 불 위에 올려놓았는데 
잠깐 정신을 팔다가 그만 냄비를 까맣게 태워 먹었다고 
금방 울기라도 할 것처럼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냄비는 아내가 제일 아끼던 냄비였다고 했다.
지난번 홈쇼핑에서 거금을 들여 6개월 할부로 산 거였단다.

"내 힘으로 까맣게 탄 냄비를 닦으려고 했는데
힘들어서 도저히 안된단 말이야"
아내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 눈치를 본다.
"벌써 한두 번이 아니잖아, 정신을 어디에 팔아먹었어?"
나는 대뜸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아내가 금방이라도 눈물 찔끔 흘릴 것 같아 그냥 꾹 눌러 참았다. 
별수없이 나는 철 수세미를 들고 냄비의 새카만 밑바닥을 향해 
사정없이 문지르기 시작했다.

*****

그려, 그려. 아들! 참말로 잘하는겨.
사람이 어찌 죄다 완벽할 수가 있능가?
살림살이 하다보면 실수로 냄비를 쪼까 태워먹을 수도 있능거시제.

모르고 헌일. 워쩔수 없제. 
근다고 여편네에게 소락때기를 치는 몬난 남편은 돼지말어.
냄편이란 여편네가 어쩌다허는 실수를 가지고 
쫌시럽게 따따부따 증허게 야단치는 거 아니여. 
알고도 그만 모른체허는 거시 사내 대장부 남자여.
살다가보믄 실수는 여자, 남자 누구나 허는 거시니께.
니도 가끔 실수도 하잖혀.

글고, 남자가 그넘의 힘뒀다 머헐거시여?
이럴 때 힘아리 팍팍 줘서 새카만 냄비를 밴질밴질허게 만들어 
니 각시 놀라게 혀봐. 
여편네한티 점수는 이럴 때 따는 거시여. 이넘아!
잘 알것제? 히히히... 
울 며늘아그가 엔날의 나를 꼭 닮았는게벼.

 

중앙일보

news.joins.com/article/24054591?cloc=joongang-home-newslist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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